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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어둑한 저녁, 미스트헤이븐 고등학교의 텅 빈 복도는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첫 번째 트라우마클럽 모임이 끝난 후, 올리비아는 검은 가죽 장갑을 꽉 쥐며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첫 모임에서 아무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닥터 모로의 과제는 명확했다. '학교 내 안전한 공간을 찾아오라.'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었다. 그녀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벽을 스치듯 만지며 걸어가던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핀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접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올리비아는 생각했다. 학교에 다닌 지 몇 년이 됐지만, 이 복도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 있는 낡은 문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에는 '지하실 -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올리비아는 망설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문 쪽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이상해..." 올리비아는 중얼거렸다.

문손잡이에 손을 대자마자,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살짝 열렸다. 올리비아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호기심이 그녀를 밀어넣었다. 트라우마클럽 과제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그녀는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다.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갑고 축축해졌다.

"누구 있어요?" 올리비아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놀라 외쳤다.

"올리비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는 손전등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비췄다. 헤일리였다. 그녀는 스케치북을 꼭 붙잡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여기서 뭐 해?" 올리비아가 물었다.

헤일리는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바로 이 지하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계단, 좁은 복도, 그리고 멀리 보이는 둥근 문까지.

"어떻게 이걸..." 올리비아의 말이 끊겼다.

"나도 몰라. 그냥... 그렸어. 그리고 나서 이곳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어." 헤일리의 목소리는 떨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트라우마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에게 무관심했지만, 지금은 이상한 연결감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숙녀분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와 헤일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맥켄지가 계단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여러 색상의 실 팔찌들이 달랑거렸다.

"너도 여기 왔네." 올리비아가 말했다.

맥켄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기억에서 이 지하실이 떠올랐어. 한 번도 와본 적 없는데 말이야."

세 소녀는 서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우연히 같은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앞으로 가볼까?" 맥켄지가 제안했다.

올리비아는 망설였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과 함께라면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함께 좁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 끝에는 헤일리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둥근 문이 있었다.

"이게 뭐지?" 올리비아가 문에 새겨진 이상한 문양을 가리켰다.

맥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겠어. 하지만 어딘가서 본 것 같아."

헤일리는 스케치북을 넘기며 말했다. "내가 그린 다른 그림에도 비슷한 문양이 있어."

올리비아는 문손잡이에 손을 댔다. 문은 쉽게 열렸다. 세 소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놀랍도록 넓었다. 원형의 공간이었고, 천장은 높았다. 바닥과 벽에는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방 중앙에는 이상한 장치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분수대처럼 생겼지만, 물 대신 희미한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맥켄지가 속삭였다.

세 소녀는 자석에 끌리듯 중앙의 장치로 다가갔다. 그들이 장치 주변에 원을 그리며 서자,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변했다. 정전기가 피부를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리비아는 갑자기 장갑 속 손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놀라서 장갑을 벗었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올리비아, 네 손!" 헤일리가 외쳤다.

올리비아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동안, 헤일리의 눈은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마치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 보여. 미래가... 더 선명하게..." 헤일리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동시에 맥켄지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억 속 이미지들이 방 안에 환영처럼 나타났다. 어린 소녀의 웃음소리, 깨지는 유리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세 소녀는 공포에 질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가자!" 올리비아가 외쳤다.

그들은 황급히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달려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이상한 현상은 계속되었다. 올리비아의 손에서는 여전히 빛이 나오고 있었고, 헤일리의 눈은 간헐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맥켄지 주변에는 기억의 파편들이 환영처럼 맴돌았다.

학교 복도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이상한 현상은 점차 사라졌지만, 그들이 경험한 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방금... 뭐였지?" 맥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올리비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따뜻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헤일리는 스케치북을 열어 빠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것은 방금 본 원형 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많은 세부 사항이 있었다. 벽에 새겨진 문양들, 중앙의 장치, 그리고 그 주위에 선 세 소녀의 모습까지.

"우리... 서로에게 뭔가 있어." 헤일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본 비전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어."

올리비아와 맥켄지는 말없이 헤일리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방금 경험한 것이 그들을 묘하게 연결시켰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일 다시 만나서 이야기할까?" 올리비아가 제안했다.

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음속에는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학교 사무실에 있는 모니터 앞에서 닥터 레이븐 모로는 CCTV 화면을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가죽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빠르게 메모했다.

"드디어 찾았군." 그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다음 날 아침, 올리비아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어제의 이상한 빛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장갑을 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장갑은 그녀의 방패였다. 타인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언니 샬롯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샬롯은 대학생이면서도 부모의 이혼 후 올리비아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잘 잤어?" 샬롯이 물었다.

"응." 올리비아는 짧게 대답했다. 어제 일을 언니에게 말할 수 없었다.

"오늘도 그 장갑을 낄 거야?" 샬롯이 올리비아의 손을 가리키며 물었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워서."

샬롯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접시에 팬케이크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트라우마클럽은 어땠어?"

"괜찮았어." 올리비아는 시선을 피했다. "다들 아직 서로에게 열려있지 않아."

샬롯은 올리비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시간이 걸릴 거야. 하지만 네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기뻐."

올리비아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했다. 어제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학교에 도착한 올리비아는 곧바로 헤일리와 맥켄지를 찾았다. 그들은 이미 도서관 구석에 모여 있었다.

"어젯밤에 더 그렸어." 헤일리가 곧바로 스케치북을 펼쳤다.

새 그림에는 원형 방의 바닥에 새겨진 문양이 더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자리 지도 같았다.

"이게 뭔지 알아?" 올리비아가 물었다.

맥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어렸을 때, 그 지하실에 있었던 것 같은..."

"그건 불가능해." 헤일리가 말했다. "그 문은 분명 잠겨 있었어야 해. 어떻게 우리 셋 다 같은 날 그곳을 찾아갔지?"

올리비아는 자신의 목에 걸린 앤티크 펜던트를 만졌다. 할머니의 유품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펜던트에도 비슷한 문양이 있어."

그녀는 펜던트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분명 원형 방 바닥의 문양과 유사한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뭔가 우연이 아니야." 맥켄지가 말했다. "우리 셋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

올리비아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 만지면. 그래서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녀."

헤일리와 맥켄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헤일리가 조용히 말했다. "때때로 미래의 조각들을 봐. 명확하지 않지만, 그림으로 그리게 돼."

두 사람이 맥켄지를 바라보자, 그녀는 손목의 실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기억을 바꿀 수 있어. 내 기억을. 하지만 그 대가로 기억의 공백이 생겨."

세 소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비밀을 공유한 순간이었다.

"어젯밤에 그 방에서... 우리 능력이 더 강해진 것 같았어." 올리비아가 말했다.

"맞아." 헤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비전은 훨씬 더 선명했어."

"그리고 내 기억들이 실제로 보이고 들리게 됐어." 맥켄지가 덧붙였다.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각자의 능력에 대해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두렵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주었다.

"다시 그곳에 가볼까?" 맥켄지가 제안했다.

헤일리는 망설였다. "위험할 수도 있어."

"하지만 답을 찾으려면 가야 해." 올리비아가 말했다. "우리 능력이 왜 있는지, 그리고 그 방이 뭔지 알아내야 해."

그들은 방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 수업 중, 올리비아는 계속해서 그리핀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마치 그녀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점심 시간, 올리비아는 식당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그리핀이 그녀 앞에 앉았다.

"장갑이 새것이네." 그리핀이 올리비아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리비아는 경계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그리핀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매력적이었지만, 올리비아는 그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다. "그냥 궁금했어.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는 이유가 뭐야?"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야." 올리비아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리핀은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올리비아."

그의 목소리에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올리비아는 불안해졌다. 그가 어제 지하실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올리비아가 물었다.

그리핀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한번 만져볼래? 장갑 없이?"

올리비아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미쳤어?"

"겁나?" 그리핀이 도발했다.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내버려둬, 그리핀."

그녀가 떠나려 할 때, 그리핀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장갑 위로였지만, 올리비아는 여전히 그의 감정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 의심, 그리고... 두려움?

"조심해, 올리비아." 그리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뭘 하는지 모르면 위험할 수 있어."

올리비아는 팔을 빼내고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리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그녀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복도에서 헤일리와 맥켄지를 만났을 때, 올리비아는 여전히 동요된 상태였다.

"무슨 일이야?" 헤일리가 물었다.

"그리핀이... 뭔가 알고 있어. 우리에 대해." 올리비아가 말했다.

맥켄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안전하지 않아. 방과 후에 만나자."

수업이 끝난 후, 세 소녀는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핀이나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하실 문은 어제처럼 쉽게 열렸다. 그들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원형 방으로 향했다. 원형 방의 문 앞에서, 올리비아는 잠시 멈춰 섰다.

"준비됐어?" 그녀가 물었다.

헤일리와 맥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제와 같았다. 중앙의 장치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장치의 빛이 더 밝아졌다.

"우리를 인식하는 것 같아." 헤일리가 말했다.

세 소녀는 조심스럽게 장치 주변에 원을 그리며 서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방 안의 공기가 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그녀의 손에서 다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이 빛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느꼈다.

헤일리의 눈은 다시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빠르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리는 동안, 맥켄지는 주변 공기가 일렁이며 그녀의 기억이 환영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건..." 헤일리가 갑자기 말했다. "이 방은 우리 능력을 증폭시키는 거야."

"어떻게 알아?" 올리비아가 물었다.

"방금 봤어. 비전에서." 헤일리가 대답했다. "이 방은 수백 년 전부터 여기 있었어.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 맥켄지가 물었다.

"능력을 가진 사람들." 헤일리가 대답했다. "우리만이 아니야. 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올리비아는 자신의 빛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왜 우리야? 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거지?"

헤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이 방이 답을 가지고 있을 거야."

맥켄지는 갑자기 벽으로 다가갔다. "여기 뭔가 있어."

벽에는 작은 틈새가 있었고, 그 안에는 오래된 책이 숨겨져 있었다. 맥켄지가 조심스럽게 꺼내자, 책의 표지에는 원형 방의 바닥 문양과 같은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지?" 올리비아가 물었다.

맥켄지가 책을 열자, 그 안에는 이상한 언어로 쓰인 글과 그림들이 있었다. 그림 중에는 빛나는 손을 가진 사람, 하얀 눈을 가진 사람, 그리고 기억을 조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이건..." 맥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에 대한 거야."

세 소녀는 충격에 빠져 책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능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그들을 선택했다.

갑자기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 소녀는 경계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누가 온다." 헤일리가 속삭였다.

올리비아는 재빨리 장갑을 다시 꼈다. 맥켄지는 책을 자신의 가방에 숨겼다. 그들은 장치에서 멀어져 방의 구석으로 물러났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리핀이 나타났다.

"역시 여기 있었군." 그가 말했다.

올리비아는 앞으로 나섰다. "우리를 따라왔어?"

그리핀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필요 없었어. 난 이미 이 방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헤일리가 물었다.

그리핀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발걸음이 바닥의 문양 위를 지나자,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내가 너희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가 물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도 올리비아의 것과 비슷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빛은 더 어두웠고,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너도..." 올리비아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 그리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능력이 있어. 네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지."

"뭘 할 수 있는데?" 맥켄지가 물었다.

그리핀은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네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난 감정을 조작할 수 있어."

올리비아는 뒤로 물러났다. 그것이 그리핀이 항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지는 이유였다. 그는 그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있었다.

"왜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야?" 헤일리가 물었다.

그리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위험해. 너희가 이 방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이 방은 너희 능력을 증폭시키지만, 동시에 너희를 노출시켜."

"누구에게?" 올리비아가 물었다.

그리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중앙의 장치를 바라보았다. "이게 활성화되면, 그들이 알게 돼. 너희의 존재를."

"그들이 누구야?" 맥켄지가 요구했다.

그리핀은 한숨을 쉬었다.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어. 하지만 너희를 돕고 싶어."

"왜?" 올리비아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그리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진실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너희와 달리, 난 태어날 때부터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아."

올리비아는 그의 말이 진심인지 판단하려 했다. 그녀의 능력으로도 그의 진정한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데?" 헤일리가 물었다.

그리핀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 능력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어. 그리고 너희가 누구인지, 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 알아내는 걸 도울 수 있어."

세 소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핀을 신뢰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없어." 그리핀이 갑자기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어. 우리는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더 무겁고 결단력 있는 소리였다.

"빨리!" 그리핀이 재촉했다.

세 소녀는 망설였지만, 결국 그를 따라 방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복도를 따라 달려 다른 출구로 향했다. 그리핀은 그들을 학교의 뒷문으로 이끌었고, 그들은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학교 밖 안전한 곳에 도착했을 때, 올리비아는 그리핀에게 물었다. "누가 오고 있었어?"

그리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닥터 모로. 그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어."

"트라우마클럽 상담사?" 맥켄지가 놀라서 물었다.

그리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해."

"어떻게 알아?" 헤일리가 물었다.

그리핀은 잠시 망설였다. "내 아버지가... 그와 함께 일해.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고 있어."

"왜?" 올리비아가 물었다.

"그건 내가 아직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어." 그리핀이 대답했다. "하지만 좋은 의도는 아니야."

세 소녀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그들의 능력, 원형 방, 닥터 모로, 그리고 이제 그리핀까지.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

"내일 다시 만나자." 그리핀이 제안했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게. 하지만 지금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안전해."

세 소녀는 동의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지만, 마음속에는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

올리비아가 집에 도착했을 때, 샬롯은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늦었네." 샬롯이 말했다. "어디 있었어?"

올리비아는 거짓말을 하기 싫었지만,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친구들과 있었어."

샬롯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 누구?"

"헤일리와 맥켄지. 트라우마클럽에서 만났어."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샬롯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좋네! 네가 새 친구를 사귀다니."

올리비아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그녀는 언니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샬롯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후, 올리비아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할머니의 펜던트를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다. 펜던트의 문양, 원형 방의 문양, 그리고 책에 있던 그림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벗고 손을 바라보았다. 빛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저주일까, 아니면 선물일까?

창밖을 바라보며, 올리비아는 헤일리와 맥켄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도 같은 질문으로 고민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리핀은 정말 그들을 도우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올리비아는 내일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의 꿈속에서도, 원형 방의 빛나는 장치와 그리핀의 어두운 눈동자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

헤일리는 집에 돌아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방 벽에는 수많은 스케치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은 그녀가 본 비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녀는 오늘 그린 새 스케치를 벽에 붙였다. 원형 방, 중앙의 장치, 그리고 네 명의 인물 - 올리비아, 맥켄지, 그리핀, 그리고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그려진 또 다른 인물.

헤일리는 그 희미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비전에서, 그 인물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에이든의 별자리 팔찌를 만졌다. 에이든이 자살하기 전, 그녀는 그의 죽음을 예견했지만 막지 못했다. 그 죄책감이 그녀를 계속 괴롭혔다.

"네가 있다면 뭐라고 할까, 에이든?" 그녀는 속삭였다.

창밖을 바라보며, 헤일리는 별들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에이든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

맥켄지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 클로이가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빈 와인 병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맥켄지는 한숨을 쉬며 담요를 가져와 어머니를 덮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가방에서 원형 방에서 가져온 책을 꺼냈다. 책은 여전히 이상한 언어로 쓰여 있었지만, 그림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 중에는 미스트헤이븐의 지도도 있었다. 그리고 지도 위에는 특정 지점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학교, 등대, 그리고 '위스퍼 우드'라고 불리는 숲.

맥켄지는 손목의 실 팔찌들을 만졌다. 각 색상은 그녀가 변형한 특정 기억을 나타냈다. 빨강은 아버지의 폭력, 파랑은 어머니의 슬픔, 녹색은 그녀가 만든 행복한 순간들, 그리고 보라는 그녀가 두려워하는 기억들.

그녀는 책을 다시 가방에 숨기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올리비아와 헤일리에게 책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리핀...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맥켄지는 눈을 감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능력, 그녀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미래.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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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사무실에서, 닥터 레이븐 모로는 검은색 가죽 수첩에 오늘의 관찰 결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세 소녀의 능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원형 방이 그들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핀의 개입은 예상치 못했지만, 유용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됐다."

그는 수첩을 닫고 전화를 들었다. "매튜? 나야. 그들이 원형 방을 찾았어. 그리고 그리핀이 그들과 접촉했어... 그래, 계획대로 진행 중이야. 곧 크리스탈 공명기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전화를 끊은 후, 모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스트헤이븐의 밤하늘에는 이상한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그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곧 시작될 거야." 그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