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메아리는 세이렌의 몸으로 연습실 구석에 앉아 노트에 음표를 빠르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종이 위를 춤추듯 움직일 때마다 멜로디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에 은은한 광채를 더했고, 그 빛은 마치 그녀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창의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이 브릿지 부분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뭔가 더 필요해.'
메아리는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세이렌의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온전히 메아리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몰래 연습하는 이 순간만큼은 타인의 몸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 앞으로 자리를 옮겨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렀다. 처음에는 소리를 최대한 작게 내려고 노력했지만, 곡의 흐름에 점점 빠져들면서 그녀의 손가락은 더욱 자신감 있게 건반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메아리는 눈을 감고 멜로디에 몸을 맡겼다. 이 순간만큼은 무대 위에서의 공포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모두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날카로운 목소리에 메아리는 놀라 손을 건반에서 떼었다. 연습실 문간에 한채연이 서 있었다. 기획사 대표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완벽하게 정돈된 슈트 차림과 단정하게 묶은 머리는 그녀의 권위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강조했다.
"세이렌,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지금 무슨 곡을 치고 있었지?"
메아리는 급하게 노트를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세이렌의 목소리로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그냥... 즉흥적으로 친 거예요.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가 있어서..."
한채연은 천천히 연습실로 들어와 피아노 옆에 놓인 노트를 집어 들었다. 메아리는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한채연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즉흥적이라고? 이렇게 꽤 완성된 악보를 보니 전혀 즉흥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한채연은 노트를 천천히 넘기며 말을 이었다.
"세이렌, 넌 작곡가가 아니야. 넌 아이돌이고, 우리가 정해준 이미지와 컨셉에 맞춰 활동하는 가수야. 이런 식으로 우리가 정한 방향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메아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세이렌의 몸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내면에서는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왜요? 왜 제가 작곡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이건 정말 좋은 곡이에요. 팬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한채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녀는 노트를 탁 소리 나게 피아노 위에 내려놓았다.
"세이렌, 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우리는 몇 년 동안 너의 이미지를 구축해왔어. 청순하고 우아한, 완벽한 아이돌. 그런데 갑자기 네가 작곡가 행세를 하면서 이미지를 망치려 한다면, 그건 회사뿐만 아니라 너에게도 큰 손해야."
메아리는 한채연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세이렌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결국 세이렌의 삶이고, 자신이 영원히 이 몸에 있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이렌의 일기장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세이렌도 이런 통제와 제약에 숨막혀 했다는 것을.
"대표님, 저는 그저... 저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채연은 한숨을 내쉬며 메아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단호했다.
"세이렌, 넌 지금 중요한 시기에 있어. 다가오는 쇼케이스는 너의 커리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거야. 우리가 정한 컨셉에서 벗어나지 마. 네가 할 일은 연습실에서 우리가 선택한 곡들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거야. 알겠니?"
메아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 순간 그녀는 세이렌이 느꼈을 답답함과 좌절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 대표님."
한채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 저녁 6시에 전체 연습이 있으니 늦지 마."
한채연이 떠난 후, 메아리는 피아노 의자에 무겁게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노트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세이렌의 얼굴에 그려진 슬픔은 메아리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으며 작은 결심을 했다.
'언젠가는 이 곡을 세상에 들려주고 말 거야. 세이렌의 진짜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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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메아리의 학교 음악실에서는 세이렌이 메아리의 몸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받고 있었고, 그 광경이 세이렌에게는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메아리의 손가락은 세이렌의 것보다 더 길고 가늘었으며, 피아노를 다루는 데 더 적합해 보였다.
세이렌은 자신이 알고 있는 클래식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메아리의 몸이 음악에 반응하는 방식이 놀라웠다. 마치 이 몸이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손가락이 건반 위를 자연스럽게 춤추듯 움직였다. 세이렌은 점점 더 깊이 음악에 빠져들었고, 주변 환경을 잊은 채 연주에 몰입했다.
"와, 메아리! 그렇게 잘 치는 줄 몰랐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세이렌은 놀라 연주를 멈추었다. 음악실 문간에 중년의 여성 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여 있었다.
"선생님..." 세이렌은 메아리의 목소리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박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음악실로 들어왔다. "너 정말 달라졌구나. 전에는 피아노를 치라고 해도 겨우 기본적인 것만 하더니, 지금은 쇼팽을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하다니."
세이렌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노력했다. 그녀는 메아리가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냥... 최근에 많이 연습했어요."
박 선생님은 세이렌 옆에 앉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에는 진심 어린 관심이 담겨 있었다.
"메아리야, 네가 아버지처럼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넌 음악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 같았어. 특히 성악은..."
세이렌은 눈을 깜빡였다. 메아리의 아버지가 음악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메아리가 성악을 했었다는 사실이 새로운 정보였다.
"네... 그랬죠."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성악가였어. 그리고 넌 그의 재능을 물려받았지. 네가 다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어 기쁘구나."
세이렌은 메아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이어갔다.
"선생님, 제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떻게 변했나요?"
박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슬퍼졌다.
"넌 완전히 달라졌어. 전에는 항상 밝고 활기차고, 노래하는 걸 정말 좋아했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주인공이었고. 하지만 사고 이후... 넌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어. 웃지도 않고, 노래하지도 않고. 존재감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 같았지."
세이렌은 가슴이 아파왔다. 메아리가 겪었을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외할머니를 잃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음악 경연대회가 다음 주에 있어." 박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네가 참가해보는 건 어떨까? 네 연주 실력이라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세이렌은 잠시 고민했다. 이것은 메아리의 재능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메아리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생각해볼게요, 선생님."
박 선생님은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좋아. 천천히 생각해봐. 하지만 내 생각에는 네 아버지도 네가 다시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실 거야."
선생님이 떠난 후, 세이렌은 피아노 앞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메아리의 과거와 트라우마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녀는 메아리와 자신 사이의 이상한 연결고리를 느꼈다. 둘 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그 상실감이 그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세이렌은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부드럽게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배웠던 자장가였다. 음악이 음악실을 채우는 동안, 세이렌은 메아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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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실 밖, 복도에서는 김민준이 문틈으로 세이렌(메아리의 몸)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과 의심이 가득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민준은 검은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고, 그의 날카로운 눈은 세이렌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건 메아리가 아니야. 절대로.'
민준은 지난 며칠 동안 '메아리'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왔다. 말투, 걸음걸이, 습관, 모든 것이 달랐다. 특히 지금 그 피아노 연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메아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피아노를 제대로 친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쇼팽의 녹턴을 마치 전문 피아니스트처럼 연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민준은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와 메아리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그는 메아리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얼마나 변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메아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메아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민준은 결심했다. 오늘 방과 후, 그는 '메아리'를 직접 confrontation할 것이다. 그녀가 진짜 메아리가 아니라면, 그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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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후, 세이렌(메아리의 몸)은 학교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녀는 메아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메아리,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세이렌은 돌아보았다. 민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세이렌은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물론이지, 민준아." 세이렌은 메아리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준은 그녀를 학교 뒤편 조용한 벤치로 이끌었다. 그곳은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두 사람이 벤치에 앉자, 민준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넌 메아리가 아니지?"
세이렌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란 표정을 감추려 노력했지만, 민준의 날카로운 눈은 그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누구겠어, 당연히 메아리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메아리가 아니야. 메아리는 절대로 그렇게 피아노를 치지 못해. 그리고 메아리는 절대로 그런 말투를 쓰지 않아. 넌 누구지? 그리고 진짜 메아리는 어디 있어?"
세이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메아리와 민준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빨리 자신의 정체를 의심할 줄도 몰랐다.
"난... 난..." 세이렌은 말을 더듬었다.
민준의 눈에 분노가 번쩍였다.
"메아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해!"
세이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민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믿지 않겠지만, 난 세이렌이야. 아이돌 세이렌."
민준의 눈이 커졌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영혼이 메아리의 몸에 들어와 있어. 그리고 메아리의 영혼은 내 몸에 있고. 우리는 5일 전에 영혼이 바뀌었어."
민준은 세이렌을 미친 사람을 보듯 바라보았다.
"그게 말이 돼? 넌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을 거라고 생각해?"
세이렌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하지만 이건 사실이야. 메아리와 나는 같은 날 같은 반지를 샀고, 그날 밤 우리의 영혼이 바뀌었어. 메아리는 지금 내 몸으로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어."
민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세이렌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씩 흔들리는 듯했다.
"그럼... 증명해봐. 네가 정말 세이렌이라는 걸."
세이렌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는 메아리의 SNS 계정에 접속해 메아리(세이렌의 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민준이 우리의 비밀을 알아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몇 초 후, 답장이 왔다.
"정말? 어떻게?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해도 될 것 같아?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해."
세이렌은 민준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이게 메아리야. 내 몸에 있는 메아리."
민준은 메시지를 읽고 난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의심과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이건...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그는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처음에는 나도 미쳤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민준은 고개를 들어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이 있었지만, 이제 그곳에는 호기심도 함께 있었다.
"그럼, 메아리는 지금 괜찮아? 그녀는... 네 몸으로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하지만 곧 중요한 쇼케이스가 있어서 걱정돼."
민준은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등을 기대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이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야.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희는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이야?"
세이렌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모르겠어. 우리는 그 반지를 판 고미술상을 다시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곳은 이미 사라졌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민준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잠깐, 그 반지? 어떤 반지?"
세이렌은 손가락에 끼고 있는 은빛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디자인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미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반지야. '영혼의 쉼터'라고 불리는 반지. 메아리와 나는 같은 날 같은 반지를 샀어."
민준은 반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갑자기 깨달음이 번쩍였다.
"잠깐만, 이 문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세이렌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어디서?"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이 문양을 본 적이 있어. 어쩌면 도서관에서... 아니면 박물관에서... 기억이 안 나."
세이렌은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이것은 그들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민준, 네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해. 메아리도 분명 자기 몸으로 돌아가고 싶을 거야."
민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먼저, 메아리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
세이렌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우리 셋이 만나서 이야기하자. 메아리도 분명 너를 만나고 싶어할 거야."
민준은 이 모든 상황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는 메아리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메아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순한 우정 이상이었고, 그녀가 어떤 몸에 있든 그는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내일 방과 후에 만나자.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이제 그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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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메아리(세이렌의 몸)는 연습실에서 스텔라 멤버들과 함께 쇼케이스를 위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세이렌처럼 보이고 행동하려고 노력했지만, 라니아의 날카로운 시선이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녔다.
"세이렌, 그 동작이 아니야. 이렇게야." 라니아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메아리는 땀을 닦으며 라니아를 바라보았다. 라니아는 완벽한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우아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미안해, 다시 해볼게."
메아리는 음악에 맞춰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이렌의 몸으로 춤을 추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이렌의 몸은 메아리의 것보다 더 유연하고 단련되어 있었지만, 그 몸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은 여전히 도전이었다.
연습이 끝난 후, 메아리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녀는 세이렌의 몸을 거울로 바라보며 여전히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이렌의 피부는 마치 도자기처럼 매끄럽고 하얬으며, 그녀의 긴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비단처럼 빛났다.
"세이렌."
메아리는 놀라 돌아보았다. 라니아가 탈의실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라니아... 무슨 일이야?"
라니아는 천천히 탈의실로 들어와 메아리 앞에 섰다. 그녀의 눈은 마치 메아리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넌 누구야?"
메아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야? 난 세이렌이야."
라니아는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니, 넌 세이렌이 아니야. 세이렌은 절대로 그렇게 춤을 추지 않아. 그리고 세이렌은 절대로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 넌 누구지? 그리고 진짜 세이렌은 어디 있어?"
메아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하루에 두 번이나 정체가 의심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녀는 라니아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라니아는 민준과 달리, 메아리를 도울 의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난 세이렌이야, 라니아. 그냥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을 뿐이야."
라니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메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해? 그때 내가 너에게 뭐라고 말했지?"
메아리는 당황했다. 그녀는 세이렌과 라니아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그건..."
라니아의 눈이 승리의 빛으로 번쩍였다.
"역시 넌 세이렌이 아니야. 내가 한채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메아리는 공포에 질렸다. 만약 한채연이 그녀가 세이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와 세이렌 모두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라니아, 제발. 이건 나와 세이렌 사이의 일이야. 한채연에게 말하지 마."
라니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내게 진실을 말해. 넌 누구야? 그리고 진짜 세이렌은 어디 있어?"
메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라니아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내 이름은 이메아리야. 세이렌과 나는... 영혼이 바뀌었어. 세이렌은 지금 내 몸에 있고, 나는 세이렌의 몸에 있어."
라니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잠시 말을 잃은 듯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메아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겠어. 우리는 같은 날 같은 반지를 샀고, 그날 밤 우리의 영혼이 바뀌었어. 우리는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라니아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제 호기심도 함께 있었다.
"그럼... 세이렌은 지금 네 몸으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내 학교에 다니고 있어. 내 친구들과 어울리고, 내 수업을 듣고 있어."
라니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정말 웃기네. 국민 아이돌 세이렌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살고 있다니."
메아리는 라니아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라니아, 제발 이 일을 한채연에게 말하지 마. 우리는 곧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라니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은 비밀로 해줄게. 하지만 그 대신, 난 너희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그리고... 세이렌을 만나고 싶어."
메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라니아. 내일 우리는 세이렌과 만날 예정이야. 네가 함께 하고 싶다면, 환영해."
라니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무언가 계산적인 것이 있었지만, 메아리는 지금 상황에서 라니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좋아, 내일 만나자."
라니아가 탈의실을 나간 후, 메아리는 거울 앞에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세이렌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어. 우리는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야 해.'
메아리는 휴대폰을 꺼내 세이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준이 우리의 비밀을 알아냈어. 그리고 라니아도. 내일 우리 모두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몇 초 후, 세이렌의 답장이 왔다.
"알았어. 내일 방과 후에 만나자. 그리고 조심해, 메아리. 라니아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메아리는 라니아의 미소를 떠올리며 세이렌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라니아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거울 속 세이렌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이 상황을 해결할 거야.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거야.'
메아리는 가방을 들고 탈의실을 나섰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녀는 세이렌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만나는 날. 그리고 아마도, 그들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