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ow_back_ios0
settings
chevron_left이전

**에피소드 3**

서울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했다. 특히 학교로 향하는 길은 더욱 그랬다. 세이렌의 몸에 깃든 메아리의 영혼은 이 낯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반면, 메아리의 몸을 빌린 세이렌의 영혼은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울리는 알람 소리에 세이렌(메아리의 몸)은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화려한 펜트하우스가 아닌 소박한 방, 온기가 느껴지는 이불, 그리고 벽에 붙은 포스터들. 세이렌의 포스터도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벽에 걸려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메아리야, 일어났니? 학교 늦겠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에 세이렌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연예계에서 자라온 그녀에게 평범한 가정의 아침은 낯설지만 따뜻했다.

"네, 일어났어요!"

세이렌은 메아리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거울 앞에 섰다.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평범한 소녀의 얼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맑은 피부, 조금은 긴장된 듯한 눈빛. 세이렌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만져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완벽해 보이기 위해 항상 신경 써야 했던 자신의 얼굴과 달리, 메아리의 얼굴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이 얼굴로 학교에 가야 하는구나..."

세이렌은 깊은 숨을 내쉬며 메아리의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평소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주는 화려한 의상과는 달리, 단정한 교복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한편, 메아리(세이렌의 몸)는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세이렌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피부, 세련된 이목구비, 그리고 가볍게 물든 금발. 마치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이었다.

"이게 진짜 현실이라니..."

메아리는 세이렌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매니저 손현우'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세이렌씨, 오늘 10시에 연습실에서 만나기로 했잖아요. 지금 출발하셨나요?"

메아리는 당황했다. 아이돌의 일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아, 네... 곧 출발할게요."

"컨디션은 어때요? 목소리가 좀 다른데."

"괜찮아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알겠어요. 그럼 연습실에서 뵐게요. 오늘은 중요한 시상식 리허설이 있으니 늦지 마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메아리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돌의 삶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녀는 세이렌의 옷장을 열어보았다. 화려한 의상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가장 평범해 보이는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골랐다.

'일단 연습실로 가야겠다. 세이렌의 그룹 멤버들을 만나게 되겠지?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울까...'

메아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세이렌(메아리의 몸)은 메아리의 어머니가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평소 차량으로 이동하던 그녀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버스에 올라탄 세이렌은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 학생들, 그리고 분주한 도시의 모습. 그녀가 늘 보던 세상과 같은 세상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학교에 도착한 세이렌은 메아리의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아무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돌로서 항상 주목받던 그녀에게 이런 무관심은 낯설었다. 그녀는 메아리의 이름표가 붙은 책상에 앉았다.

"야, 메아리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세이렌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단정한 인상의 남학생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안녕?"

세이렌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왜 그래? 어제 약속한 음악 파일 가져왔어?"

"음악 파일?"

세이렌은 당황했다. 메아리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 미안. 깜빡했어. 내일 가져올게."

남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오늘 왜 이래? 평소랑 말투도 다르고."

세이렌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그래?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봐."

"음... 그렇구나. 아, 참! 오늘 점심시간에 음악실에서 만나자. 작곡한 거 들려줄 테니까."

"작곡?"

세이렌은 더욱 놀랐다. 메아리가 작곡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왜 그래? 너 요즘 정말 이상해. 지난주부터 계속 작업 중이라며? 아버지 추모곡 말이야."

세이렌은 잠시 말을 잃었다. 메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아, 그래. 미안해... 민준아. 기억났어."

그제서야 세이렌은 남학생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메아리의 친구 김민준. 메아리가 SNS에서 자주 언급했던 친구였다.

"그럼 점심시간에 보자."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세이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아리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한편, 메아리(세이렌의 몸)는 세이렌이 속한 걸그룹 '스텔라'의 연습실에 도착했다. 거울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에는 이미 몇몇 멤버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메아리(세이렌의 몸)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세이렌! 드디어 왔구나. 컨디션은 어때?"

짧은 머리에 활기찬 표정의 멤버가 다가왔다.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해."

메아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너 목소리가 좀 다른데? 감기 걸렸어?"

"아니, 그냥... 아침이라 그런가봐."

그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멤버가 메아리(세이렌의 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의심이 서려 있었다.

"세이렌, 너 요즘 뭔가 달라 보여. 특히 오늘은."

메아리는 긴장했다. 세이렌의 그룹 멤버들은 그녀를 매일 보는 사람들이었다. 작은 변화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어떻게 달라?"

"모르겠어. 그냥... 느낌이 달라."

날카로운 눈매의 멤버는 계속해서 메아리를 관찰했다.

"라니아, 그만해. 세이렌도 피곤할 거야. 시상식 준비하느라."

짧은 머리의 멤버가 라니아를 말렸다.

"그래, 태오. 하지만 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라니아는 마지막으로 메아리를 한번 더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메아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라니아라는 멤버가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경 쓰지 마. 라니아는 항상 그래. 너무 예민해."

태오라는 멤버가 메아리를 위로했다.

"고마워..."

"자, 이제 리허설 시작하자. 매니저님이 오시기 전에."

태오의 말에 모든 멤버들이 자리에 섰다. 메아리는 당황했다. 세이렌의 안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저기... 나 오늘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먼저 다들 해보는 거 보고 할게."

"뭐? 세이렌이 안무를 잊어버렸다고? 말도 안 돼!"

라니아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괜찮아, 세이렌. 우리가 먼저 할게. 너는 좀 쉬어."

태오가 다시 한번 메아리를 도왔다. 메아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연습실 한쪽에 앉았다. 음악이 시작되고 멤버들이 안무를 시작했다. 메아리는 그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세이렌의 위치와 동작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걸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을까... 난 춤을 잘 못 추는데...'

메아리는 불안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안무를 외우기 시작했다.

세이렌(메아리의 몸)은 메아리의 학교에서 첫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국어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현대 시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세이렌은 오랜만에 듣는 학교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연예계에서 자라온 그녀는 정규 교육보다는 개인 교습을 통해 공부했기 때문에, 이런 단체 수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수업 중간, 그녀는 메아리의 공책을 펼쳐보았다. 깔끔한 필기와 함께, 여백에는 작은 음표들과 가사로 보이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세이렌은 놀랐다. 메아리가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작곡도 하는구나...'

세이렌은 메아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는 민준과의 약속대로 음악실로 향했다. 음악실 문을 열자 민준이 이미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왔구나. 자, 이게 내가 편곡한 거야."

민준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멜로디가 음악실을 채웠다. 세이렌은 그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하지만 감동적인 멜로디였다.

"어때? 네 작곡에 내 편곡이 잘 어울리지?"

"정말 아름다워..."

세이렌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녀는 많은 프로듀서들과 작업해왔지만, 이렇게 순수한 감정이 담긴 음악은 오랜만이었다.

"그래? 다행이다. 네 아버지를 위한 곡이니까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

세이렌은 다시 한번 메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에 궁금증이 생겼다.

"민준아... 내 아버지에 대해 더 말해줄래?"

민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

"그냥... 네가 보는 관점에서 듣고 싶어."

민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피아노에서 손을 떼었다.

"글쎄... 너의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음악가셨어. 특히 성악에서는 최고였지. 네가 성악을 시작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었잖아. 그런데 그 사고 이후로 네가 성악을 완전히 포기하고 작곡으로 전향한 거... 모두가 이해하지만,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해."

세이렌은 놀랐다. 메아리가 성악을 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버지의 사고 이후 포기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고가... 어떤 사고였지?"

민준의 표정이 더욱 의아해졌다.

"메아리야, 너 정말 괜찮아?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세이렌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 질문을 한 것이다.

"아니... 그냥 가끔 그날을 떠올리기가 힘들어서..."

민준은 세이렌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걱정과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2년 전, 너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너의 첫 성악 콩쿠르를 보러 오시던 중이었지. 그 이후로 넌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고, 성악을 포기했어. 하지만 음악은 포기하지 않았지. 작곡으로 전향해서 계속 음악을 만들었어. 그게 네 아버지가 원하셨을 거라고 생각해."

세이렌은 말을 잃었다. 메아리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녀가 왜 존재감 없이 지내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고마워, 민준아..."

세이렌은 메아리의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민준은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네 파트 한번 불러볼래? 가사는 아직 완성 안 됐지만, 멜로디만이라도."

세이렌은 망설였다. 메아리가 무대 공포증이 있다면, 노래를 부르는 것도 힘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이렌 자신은 노래하는 것이 직업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래를 시작했다.

메아리의 목소리로 나오는 세이렌의 노래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민준은 놀란 표정으로 피아노 연주를 멈추었다.

"메아리야... 네 목소리가..."

세이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메아리의 평소 노래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왜? 이상해?"

"아니... 그냥... 너무 달라. 훨씬 자신감 있고, 기술적으로도 완벽해. 마치 프로 가수 같아."

세이렌은 당황했다. 더 이상 의심을 살 수 없었다.

"아... 그냥 최근에 혼자 많이 연습했어. 아버지를 위한 곡이니까 잘 하고 싶어서."

민준은 여전히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해, 메아리야. 네 아버지가 들으셨다면 정말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

세이렌은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했다. 메아리의 친구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했다.

한편, 메아리(세이렌의 몸)는 연습실에서 안무를 따라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의 연습 끝에 기본적인 동작은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이렌, 오늘 왜 이렇게 안무가 엉망이야? 다음 주 시상식에서 이런 실력으로 나갈 거야?"

라니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메아리는 당황했다.

"미안해... 좀 더 연습할게."

"됐어, 라니아. 세이렌도 사람이야.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지."

태오가 다시 한번 메아리를 감싸주었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고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매와 세련된 차림새의 그녀는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모든 멤버들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메아리도 급히 따라 인사했다.

"연습은 잘 되고 있나요?"

대표로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네, 대표님.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세이렌, 너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괜찮니?"

대표의 시선이 메아리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빛은 걱정보다는 경계심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다음 주 시상식은 우리 스텔라에게 매우 중요한 자리야. 특히 너, 세이렌. 네가 솔로 무대도 있으니까 더 완벽해야 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메아리는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로 무대라니, 더욱 부담이 되었다.

"좋아. 그럼 계속 연습해. 내일 다시 확인하러 올게."

대표는 차갑게 말하고 연습실을 나갔다. 메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채연 대표님은 항상 그래.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태오가 메아리를 위로했다.

"그래도 대표님 말씀이 맞아. 세이렌, 네 솔로 무대는 정말 중요해. 네가 망치면 우리 그룹 전체 이미지가 망가져."

라니아는 여전히 날카롭게 말했다.

메아리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세이렌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압박감이 심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시상식을 무사히 넘겨야 했다.

오후가 되자, 세이렌(메아리의 몸)은 메아리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학 시간이었다. 세이렌은 수학에 약한 편이라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녀는 메아리의 공책을 펼쳐 필기를 시작했지만, 곧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대신 공책 여백에 멜로디 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메아리의 아버지를 위한 곡... 어떤 곡이었을까?'

세이렌은 메아리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특히 그녀의 음악적 재능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수업이 끝나고, 세이렌은 메아리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메아리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메아리야, 학교는 어땠어?"

"좋았어요, 어머니."

세이렌은 메아리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따뜻한 미소를 지닌 중년의 여성이었다.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였어."

"감사해요."

세이렌은 메아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둘러보며 메아리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작곡 노트가 놓여 있었다.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쳐보았다. 페이지마다 메아리의 섬세한 감성이 담긴 멜로디와 가사들이 적혀 있었다.

'이 아이는 정말 재능이 있구나...'

세이렌은 감탄했다. 메아리의 작곡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아버지에게"라는 제목의 곡은 완성도가 높았다.

그때, 메아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세이렌"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뜬 것을 보고 세이렌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메아리가 자신의 몸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보세요?"

"나야, 메아리. 어떻게 지내?"

메아리의 목소리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럭저럭. 너는?"

"힘들어... 연습이 정말 힘들어. 안무도 어렵고, 라니아라는 멤버가 계속 날 감시하는 것 같아."

"라니아는 항상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리고 한채연 대표님도 만났어. 정말 무서운 사람이더라."

"그녀도 항상 그래. 겉으로는 차갑지만 사실 우리 멤버들을 생각해."

"그래? 그렇게 안 보이던데... 아, 그리고 다음 주에 시상식이 있대. 솔로 무대도 있다고."

"뭐? 시상식? 아, 맞다. 완전히 잊고 있었어."

세이렌은 당황했다. 중요한 일정을 잊고 있었다.

"어떡하지? 난 무대에 설 자신이 없어. 특히 솔로로는..."

메아리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묻어났다.

"괜찮아, 메아리. 내가 도와줄게. 안무 영상을 보내줄 테니 연습해봐. 그리고 노래는... 네가 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무대 공포증이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

세이렌은 메아리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메아리야, 네 아버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민준이 조금 말해줬지만, 네가 직접 말해줬으면 해."

전화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성악가셨어. 나도 아버지처럼 성악을 했었지. 하지만 2년 전, 내 첫 콩쿠르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이후로 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졌고, 성악을 포기했어. 대신 작곡을 시작했지.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에서 음악을 만들기로 했어."

세이렌은 메아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녀도 어린 시절 무대 공포증을 겪었었다. 첫 TV 출연에서 실수로 넘어져 전국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때, 다시는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응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메아리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무대 공포증이 어떤 건지 알아. 하지만 그건 극복할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게."

"정말? 어떻게?"

"우선, 매일 조금씩 연습해봐. 처음에는 거울 앞에서, 그다음에는 태오나 다른 멤버들 앞에서. 그리고 무대에 설 때는 관객을 보지 말고, 한 점만 바라봐. 그게 도움이 돼."

메아리는 세이렌의 조언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고마워, 세이렌. 그리고... 네 몸으로 살아보니, 네 삶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모든 사람들의 시선... 정말 대단해."

세이렌은 메아리의 말에 감동했다. 자신의 삶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겨서 기뻤다.

"나도 네 삶을 살아보니, 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됐어.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작곡으로 계속 표현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마주한 어려움들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세이렌,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 그 고미술상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아. 하지만 그전에, 우리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네가 내 시상식을, 내가 네 학교생활을."

"알았어. 그럼 내일 다시 연락하자."

전화를 끊은 후, 세이렌은 메아리의 작곡 노트를 다시 펼쳤다. 그녀는 메아리의 곡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그녀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아버지에게"라는 곡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곡을 완성시켜주고 싶다...'

세이렌은 메아리의 곡에 자신의 경험과 감성을 더해 완성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메아리를 돕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메아리(세이렌의 몸)는 연습이 끝난 후 세이렌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의 연습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를 마친 그녀는 세이렌의 침대에 누웠다.

'세이렌의 삶은 정말 힘들구나...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라니아 같은 경쟁자의 시선, 한채연 대표의 기대...'

메아리는 세이렌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독과 압박감. 그녀는 세이렌의 노트북을 열어 시상식 무대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이렌의 과거 공연들을 보며 그녀의 스타일과 표현 방식을 연구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감 있게 무대를 장악할 수 있지?'

메아리는 세이렌의 무대 장악력에 감탄했다. 그녀는 자신도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세이렌의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의 재능과 경험을 빌려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회야. 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

메아리는 결심했다. 세이렌의 몸으로 무대에 서서, 자신의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로.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을 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성악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삶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세이렌은 메아리의 일상에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메아리는 세이렌의 삶에서 자신감과 용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들은 고미술상 주인을 만났다. 노인의 모습을 한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정한 변화는 형태가 아닌 내면에서 시작된다. 너희들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각자의 한계를 극복할 때, 비로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그들은 아직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었다. 세이렌의 시상식과 메아리의 학교 생활, 그리고 그들이 각자 가진 트라우마와의 싸움. 모든 것이 그들의 성장을 위한 여정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