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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서울의 아침은 차갑고 분주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마치 세이렌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메아리의 몸에 갇힌 세이렌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검은 생머리가 어깨를 덮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맑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고?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 몸에 갇힌 거야?'

세이렌은 메아리의 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이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음악 관련 포스터가 몇 장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악보와 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세이렌 자신의 포스터도 있었다. 포스터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자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메아리야! 학교 늦겠다, 빨리 내려와!"

어머니의 목소리에 세이렌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서둘러 메아리의 교복을 찾아 입었다. 단정한 남색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치마가 낯설게 느껴졌다. 10년 넘게 입어본 적 없는 교복이었다. 그녀는 메아리의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에서는 메아리의 어머니가 분주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소박한 옷차림의 여성이었지만, 따뜻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세이렌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에 어색함을 느꼈다.

"잘 잤니?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네."

메아리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세이렌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좀 피곤해요."

"오늘 학교에서 음악 경연대회 신청 마감일이라고 했지? 신청할 거니?"

세이렌은 순간 당황했다. 메아리의 일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직... 생각 중이에요."

"네 결정을 존중하지만, 아버지도 널 응원하실 거야. 네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워. 두려워하지 마."

어머니의 말에 세이렌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에는 슬픔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세이렌은 메아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세이렌은 낯선 등굣길을 걸었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보며 학교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가 걷는 동안, 주변 풍경은 그녀가 익숙한 화려한 강남의 모습과는 달랐다. 소박한 주택가와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는 모습이 정겨웠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낯설다니...'

세이렌은 생각했다. 그녀의 일상은 항상 매니저의 차를 타고 연습실과 방송국을 오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학생들이 분주히 교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이렌은 잠시 망설이다가 학생들을 따라 걸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메아리야. 왜 연락 안 받아? 어제 보내준 수학 문제 봤어?"

세이렌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단정한 외모의 남학생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친근함과 약간의 걱정이 묻어있었다.

"아, 미안. 어제 좀 바빴어."

세이렌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남학생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괜찮아? 뭔가 달라 보이는데."

"그래? 그냥 잠을 못 잤어."

"음악실에서 보자. 점심시간에 경연대회 이야기 좀 하고 싶어."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세이렌은 당황했다. 메아리의 친구들을 구분할 수 없었고, 어느 반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아리에게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 네 몸으로 학교에 왔어. 반이 어디야? 그리고 방금 말 건 남자애는 누구야?"

메시지를 보내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세이렌의 마음은 복잡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설렜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범한 학교생활의 시작이었다.

---

한편, 세이렌의 고급 펜트하우스에서는 메아리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세이렌의 몸으로 깨어난 메아리는 호화로운 침실을 둘러보며 혼란스러워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거울 앞에 서자, 화려한 금발 머리카락과 완벽한 피부를 가진 세이렌의 모습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정말 난 세이렌이 된 거야?'

메아리는 세이렌의 옷장을 열었다. 수십 벌의 고급 의상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녀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골라 입었다. 그때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렌씨, 일어나셨어요? 오늘 연습 일정이 있습니다."

메아리는 순간 얼어붙었다. 문 밖의 남자 목소리는 분명 세이렌의 매니저일 것이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일어났어요. 잠시만요."

메아리는 침실 문을 열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성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함과 걱정이 묻어있었다.

"컨디션은 어떠세요? 오늘 중요한 연습이 있어서요. 스텔라 멤버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네... 괜찮아요. 준비할게요."

메아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매니저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말투가 달라졌네요. 괜찮으신가요?"

"그냥... 목이 좀 아파서요."

"알겠습니다. 30분 후에 차로 이동할게요. 아침 식사는 주방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매니저가 떠나자 메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세이렌의 스마트폰을 살펴보았다. 수많은 알림과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스텔라 그룹채팅'이라는 메시지방이 눈에 띄었다.

메시지를 열자 세이렌의 그룹 멤버들이 오늘 연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메아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메시지를 읽었다. 그때 세이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난 네 몸으로 학교에 왔어. 반이 어디야? 그리고 방금 말 건 남자애는 누구야?"

메아리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2학년 3반이야. 그 남자애는 김민준이라고, 내 친한 친구야. 난 지금 네 매니저랑 같이 있어. 연습실로 가야 한대. 어떡하지?"

메시지를 보내고 메아리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세이렌의 완벽한 얼굴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아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진정해, 메아리. 넌 이제 국민 아이돌 세이렌이야.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해.'

30분 후, 메아리는 매니저와 함께 고급 세단을 타고 연습실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익숙했지만, 이렇게 고급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세이렌의 생활에 대해 생각했다.

연습실에 도착하자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아리는 그들이 세이렌의 그룹 '스텔라'의 멤버들임을 알아챘다. 그중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세이렌, 왜 이렇게 늦었어? 연습 시간 30분 전에 와서 워밍업하기로 했잖아."

날카로운 눈매와 차가운 표정의 그녀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메아리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미안해,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또 그 핑계야? 지난번 시상식 때도 그랬잖아. 너 요즘 왜 이래?"

메아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다른 멤버가 끼어들었다.

"라니아, 그만해. 세이렌도 사람인데 컨디션 안 좋을 수도 있지. 우리 연습 시작하자."

라니아라 불린 멤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메아리는 그녀를 도와준 멤버에게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

연습실은 넓고 쾌적했다. 한쪽 벽면은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었고, 최신식 음향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멤버들은 각자 워밍업을 시작했다. 메아리는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따라하려 했다.

"자, 오늘은 다가오는 쇼케이스 연습을 집중적으로 할 거예요."

안무 트레이너가 말했다. 메아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이렌의 안무를 전혀 몰랐다.

'어떡하지? 난 세이렌의 안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메아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세이렌의 메시지였다.

"연습실에 도착했어? 걱정 마. 몸이 안 좋다고 하고 오늘은 지켜만 봐. 내일 만나서 상황 정리하자."

메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안무 트레이너에게 다가갔다.

"죄송해요, 오늘 목이 많이 아파서... 춤은 어려울 것 같아요. 지켜보기만 해도 될까요?"

트레이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참여해야 해요. 쇼케이스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메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실 한쪽에 앉았다. 그녀는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세이렌의 안무를 익히려 노력했다. 라니아는 종종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연습이 한창일 때,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모든 멤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이렌, 왜 연습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

차가운 목소리로 물은 그녀는 세련된 정장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메아리는 그녀가 기획사 대표 한채연임을 직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쇼케이스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컨디션 관리도 못 하나? 너의 프로 의식이 의심스럽군."

한채연의 날카로운 지적에 메아리는 고개를 숙였다. 한채연은 메아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내일 내 사무실로 와. 할 이야기가 있어."

그녀는 더 이상의 말 없이 연습실을 나갔다. 메아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라니아가 비웃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한채연 대표님의 페이보릿도 이제 끝인가 봐?"

메아리는 라니아의 말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 낯선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

학교에 도착한 세이렌은 메아리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2학년 3반 교실을 찾아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했다. 세이렌은 이런 반응이 낯설었다. 그녀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메아리는 정말 존재감이 없나 보네...'

세이렌은 메아리의 자리로 추정되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아침에 만났던 남학생이 다가왔다.

"메아리야, 진짜 경연대회 신청할 거야?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세이렌은 잠시 당황했다. 그녀는 메아리가 음악 경연대회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 신청할 생각이야."

"정말? 드디어 마음 먹었구나! 네 작곡 실력이면 충분히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을 거야."

민준의 말에 세이렌은 놀랐다. 메아리가 작곡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래, 고마워 민준아."

세이렌은 메아리의 친구 이름을 기억해냈다. 민준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뭔가 달라 보여. 평소보다 자신감 있어 보이는데?"

세이렌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봐."

수업이 시작되고, 세이렌은 메아리의 학교생활을 경험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느끼는 학교 수업에 신선함을 느꼈다. 그러나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그녀를 지목했을 때는 당황했다.

"이메아리 학생, 이 문제 풀어볼래요?"

세이렌은 당황하며 칠판으로 나갔다. 그녀는 문제를 보고 잠시 생각했다. 다행히 간단한 문제였고, 그녀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정확합니다. 메아리 학생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선생님의 말에 몇몇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이렌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민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평소엔 절대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더니. 오늘 진짜 달라."

세이렌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메아리가 평소에 얼마나 소극적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민준은 세이렌을 음악실로 데려갔다. 음악실은 조용했고, 피아노와 기타 등 여러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보여줄 것이 있어."

민준은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세이렌에게 건넸다.

"내가 네 작곡에 맞춰 편곡해봤어. 어때?"

세이렌은 악보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음악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었기에 악보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정말 좋은데? 너 재능 있다."

민준은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다. 평소엔 항상 너무 비판적이었거든."

세이렌은 메아리의 성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민준은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음악실에 울려 퍼졌다. 세이렌은 그 곡에 감동했다.

"이 곡, 정말 아름답다."

"이건 네가 작곡한 거야, 메아리야. 난 그냥 편곡만 했을 뿐이야."

세이렌은 놀랐다. 메아리의 작곡 실력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

"그럼... 이 곡을 경연대회에 내보자."

민준은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노래하고 내가 반주하면 어떨까?"

세이렌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노래를 하면 메아리의 목소리로 불러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메아리의 노래 실력을 알지 못했다.

"그게... 요즘 목 상태가 안 좋아서. 너 혼자 연주하는 건 어때?"

민준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네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아버지 이후로 한 번도 네 노래를 듣지 못했어."

세이렌은 민준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메아리의 아버지와 그녀의 노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미안해,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아."

민준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네가 준비됐을 때 들려줘."

그때 음악실 문이 열리고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녀는 세이렌과 민준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메아리? 너 음악실에 다시 왔어?"

세이렌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민준이랑 경연대회 이야기 중이야."

"정말? 너 경연대회 나갈 거야? 와, 대박!"

여학생은 기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 진짜 네 노래 다시 듣고 싶었어. 중학교 때 네 노래 들었을 때 소름 돋았거든!"

세이렌은 메아리의 과거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수아야."

세이렌은 여학생의 이름표를 보고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다. 수아는 세이렌의 옆에 앉았다.

"근데 정말 결심한 거야? 아버지 일 이후로 네가 무대에 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이렌은 메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고."

수아는 기쁜 표정으로 메아리의 손을 잡았다.

"정말 기뻐. 네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웠어. 다시 들을 수 있다니!"

세이렌은 메아리의 목소리에 대한 호평을 들으며 더욱 궁금해졌다. 그녀는 메아리가 왜 노래를 그만두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세이렌은 메아리의 일상을 경험하며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메아리는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무언가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세이렌은 메아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문을 나섰다. 그때 민준이 그녀를 따라잡았다.

"메아리야, 같이 가자."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너 정말 달라 보여. 뭔가 결심한 것 같은데."

민준의 말에 세이렌은 잠시 생각했다.

"그냥...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

"그래, 변화는 좋은 거야. 네가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세이렌은 민준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했다. 그녀는 메아리가 이렇게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민준아, 내 아버지...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냥...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2년 전, 세이렌의 콘서트장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잖아. 네가 아버지와 함께 세이렌의 콘서트를 보러 가던 중이었고..."

세이렌은 충격을 받았다. 메아리의 아버지가 자신의 콘서트와 관련이 있다니.

"그래서 내가 노래를 그만둔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네가 성악을 전공하려고 했잖아. 아버지도 네 목소리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셨고. 하지만 사고 이후로 넌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어. 그래서 작곡으로 전향했잖아."

세이렌은 메아리의 트라우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콘서트가 메아리의 인생에 이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마워, 민준아. 이야기해줘서."

두 사람은 메아리의 집 앞에 도착했다. 민준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세이렌은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하늘을 바라보았다.

'메아리... 네 인생에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세이렌은 메아리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메아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네 친구들을 만났어. 네가 훌륭한 작곡가라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네 아버지에 대해서도.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

---

연습이 끝나고 메아리는 세이렌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지친 몸을 소파에 던지듯 앉았다. 하루 종일 세이렌인 척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게 세이렌의 일상이구나...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힘들어.'

메아리는 세이렌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세이렌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네 친구들을 만났어. 네가 훌륭한 작곡가라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네 아버지에 대해서도.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

메아리는 메시지를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렌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불편했다. 그녀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메아리는 문을 열었다. 세련된 차림의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세이렌,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내일 의상 피팅이 있어서 미리 확인하러 왔어요."

메아리는 그녀가 세이렌의 스타일리스트임을 짐작했다.

"아, 네... 들어오세요."

여성은 펜트하우스로 들어와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다음 쇼케이스 의상 디자인이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메아리는 스케치를 보며 감탄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 디자인이었다.

"와, 정말 예쁘네요."

"평소보다 훨씬 솔직한 반응이네요. 보통은 '그냥 그래' 이런 식으로 대답하시는데."

스타일리스트는 메아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세이렌,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메아리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냥... 조금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변화라... 좋네요. 그런데 한채연 대표님이 내일 만나자고 했다면서요? 무슨 일인지 알아요?"

"아뇨, 잘 모르겠어요."

스타일리스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조심하세요. 요즘 라니아가 당신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당신이 변했다고, 진짜 세이렌이 아닌 것 같다고..."

메아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라니아가 그녀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다니.

"정말요? 왜 그런 소문을..."

"라니아는 항상 당신의 자리를 노려왔잖아요. 기회만 있으면 당신을 끌어내리려고 하죠."

메아리는 세이렌의 그룹 내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고마워요, 알려주셔서."

"그리고... 이건 제가 몰래 준비한 건데요."

스타일리스트는 가방에서 작은 스케치북을 꺼냈다.

"당신만의 솔로 프로젝트를 위한 컨셉이에요. 언젠가 당신이 자신만의 음악을 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메아리는 스케치북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세이렌의 새로운 이미지를 위한 다양한 스타일 컨셉이 그려져 있었다. 더 자유롭고,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정말 멋져요. 제 이름이 뭐죠?"

스타일리스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하나요. 3년 동안 당신의 스타일리스트였는데, 갑자기 이름을 물으시다니..."

메아리는 당황했지만 빠르게 상황을 모면했다.

"아,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이하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메아리를 바라보았다.

"정말 많이 달라지셨네요. 하지만... 이 변화가 나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져요."

메아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의상 피팅 때 뵐게요. 그리고... 한채연 대표님과의 미팅, 잘 준비하세요."

이하나가 떠난 후, 메아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세이렌의 삶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많은 압박과 갈등이 숨겨져 있었다.

메아리는 세이렌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서랍장을 열어 세이렌의 개인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작은 일기장이 눈에 띄었다. 메아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장에는 세이렌의 내밀한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화려한 아이돌 생활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었다. 메아리는 세이렌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다가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오늘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49일이 되는 날이다. 외할머니는 내가 진정한 음악을 하길 바라셨는데, 나는 여전히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늘 우연히 발견한 고미술상에서 '영혼의 쉼터' 반지를 샀다. 주인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메아리는 놀랐다. 세이렌도 자신과 같은 반지를 구매했고, 그것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49일이 되는 날에.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이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네 일상을 경험했어. 정말 힘든 하루였어. 그리고 네 일기장을 봤어... 미안해. 우리가 같은 반지를 산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내일 꼭 만나서 이야기하자."

메아리는 메시지를 보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이 이상한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그리고 자신과 세이렌의 운명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궁금했다.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메아리는 생각했다. 그녀는 세이렌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낯선 몸, 낯선 삶.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이 경험이 자신에게 무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버지... 제가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죠?'

메아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은 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