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6**
엘리오는 도슨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자 한 번 더 두드렸다. 그의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들어오게."
무거운 오크 문을 열자 연구실 안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만이 공간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었다. 도슨 교수는 책상 위에 놓인 고대 서적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마치 달빛처럼 빛났다.
"교수님, 시간 좀 있으신가요?"
도슨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엘리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엘리오 군. 자네가 올 줄 알았네."
교수는 손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엘리오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책상 위에는 시간의 흐름과 양자역학에 관한 논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중 한 논문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의 가역성과 그 대가에 관한 이론적 고찰'.
"교수님, 제가...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엘리오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느꼈다.
"말해 보게."
도슨 교수는 손가락을 맞대고 기다렸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눈빛에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이가 있었다.
"저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말을 내뱉는 순간, 엘리오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교수의 반응이 두려웠다. 그가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실험실 쥐처럼 연구 대상으로 삼을까?
도슨 교수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이 엘리오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엘리오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하얀 가닥들이 보였다.
"언제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나?"
교수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마치 학생이 수업 질문을 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겨울에... 엘리나가 사고를 당했을 때부터요."
엘리오는 혼란스러웠다. 교수가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은 제 말을 믿으시나요?"
도슨 교수는 천천히 일어나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오래된 가죽 장정의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자네가 처음이 아니네, 엘리오."
교수는 책을 펼쳐 엘리오에게 보여주었다. 페이지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여러 인물들의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 모두 엘리오처럼 부분적으로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 능력자들은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 왔어.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길지 않았지."
엘리오는 책의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각 인물 옆에는 그들의 수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부분 20대나 3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다.
"무슨 뜻이죠?"
도슨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해. 자네의 생명력, 자네의 수명이 그 대가지."
엘리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최근 그는 종종 손이 떨리고 관절이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노인처럼.
"그럼 제가... 얼마나 남았을까요?"
도슨 교수는 책상으로 돌아와 엘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건 자네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능력을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자네는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 거야."
엘리오의 머릿속에 엘리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춤, 그녀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소중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수명을 희생한다 해도,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엘리나를 구할 수 있다면..."
도슨 교수의 눈에 이해의 빛이 어렸다.
"사랑은 강력한 힘이지. 하지만 자네에게 경고하고 싶네. 시간을 조작하는 것에는 더 큰 위험이 따를 수 있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야."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자신의 선택을 내렸다.
"제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이 능력에 대해서요."
도슨 교수는 책장으로 돌아가 몇 권의 책을 더 꺼냈다.
"많이 있지. 우선, 시간 능력자들은 혼자가 아니야. 역사 속에서 그들은 항상 '시간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관심을 받아왔어."
"시간의 수호자라고요?"
"그들은 시간의 흐름을 지키는 존재들이야. 자네처럼 시간을 조작하는 이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지."
엘리오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저를 해치려 할까요?"
도슨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해치려 한다기보다는... 시험하려 할 거야. 자네가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연구실의 시계가 울렸다.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에 더 이야기하게. 그리고 엘리오..."
교수는 엘리오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조심하게. 특히 꿈속에서."
엘리오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연구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그는 자신의 손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핏줄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빨리 늙어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봄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캠퍼스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들로 붐볐다. 모두 젊고 활기찬 얼굴들이었다. 엘리오는 문득 자신이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느꼈다. 겉으로는 19살 대학생이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온 것 같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무용학과 건물 앞을 지나게 되었다. 창문을 통해 연습실이 보였다. 엘리나가 홀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우아했다. 엘리오는 잠시 멈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가진 시간이 얼마나 되든,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가치 있어.'
그때, 엘리오의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 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는 벽에 기대어 고통을 참았다. 이런 증상은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오가 고개를 들자 엘리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연습복 위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채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아, 네... 괜찮아요. 그냥 약간의 두통일 뿐이에요."
엘리오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엘리나의 눈이 그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당신 머리카락... 하얀 부분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엘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는 거울을 보지 않고도 하얀 머리카락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스트레스 때문인가 봐요. 중간고사가 다가오니까."
엘리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의심이 어려 있었다.
"정말 그게 다인가요? 요즘 당신, 많이 달라졌어요."
엘리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믿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냥... 학업 때문에 좀 힘들어요."
엘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빛이 말했다. '나를 믿지 않는군요.'
"저기...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요? 같이 저녁 먹을래요?"
엘리오는 놀랐다. 엘리나가 먼저 데이트를 제안한 것은 처음이었다.
"네, 물론이죠. 좋아요."
엘리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엘리오의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좋아요. 내일 7시, 캠퍼스 북문 앞에서 만나요."
그녀는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엘리오는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엘리나와 함께할 시간이 생겼다는 기쁨, 그리고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숙사로 돌아온 엘리오는 조가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는 엘리오가 들어오자 게임을 일시 정지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 갔다 왔어? 도서관?"
엘리오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피로가 온몸을 덮쳤다.
"도슨 교수님 연구실에 갔었어."
조는 의자를 돌려 엘리오를 마주 보았다.
"무슨 일로? 물리학 과제 때문에?"
엘리오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개인적인 상담이었어."
조는 엘리오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최근 룸메이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너 요즘 많이 안 좋아 보여. 뭐 문제 있어?"
엘리오는 잠시 조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먼저 도슨 교수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했다.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알았어. 하지만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나 믿을 수 있어."
엘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조는 좋은 친구였다. 언젠가는 그에게도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고마워, 조."
엘리오는 눈을 감았다. 피로가 그를 빠르게 수면으로 이끌었다.
꿈속에서 그는 하얀 공간에 서 있었다. 주위는 텅 비어 있었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오 제임스 윌슨."
엘리오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나는 시간의 수호자다."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그리고 모든 곳에서 들려왔다.
"당신이 시간을 조작하고 있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어."
엘리오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랑. 인간들이 항상 그 이유를 대지. 하지만 네가 시간을 계속 조작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무슨 뜻이죠?"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선택해야 할 거야. 네 수명이냐, 그녀의 생명이냐."
엘리오는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이미 밤이 깊었고, 조는 자신의 침대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엘리오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서자 그는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더 많은 부분이 하얗게 변해 있었고, 얼굴에는 미세한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10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엘리오는 자신의 얼굴을 물로 씻었다. 차가운 물이 그의 피부에 닿자 정신이 맑아졌다. 그는 결심했다. 내일 엘리나에게 진실을 말할 것이다. 그녀가 믿든 믿지 않든, 그녀는 알 권리가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그는 갑자기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는 벽을 짚고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증상은 처음이었다.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일... 내일 그녀에게 말해야 해.'
엘리오는 힘겹게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도슨 교수의 말이 맴돌았다.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자네는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 거야."
그는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엘리나를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오는 평소보다 더 피곤한 상태로 일어났다. 그의 관절은 아팠고, 머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조는 이미 아침 수업을 위해 나간 상태였다.
엘리오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엘리나에게 진실을 말하기로 한 날.
그는 물리학 수업을 건너뛰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슨 교수가 말한 '시간의 수호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도서관의 고문서 섹션에서 그는 몇 시간 동안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몇몇 신화와 전설에서 시간을 다루는 존재들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그는 캠퍼스 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테이블에 다가왔다.
"여기 자리 있나요?"
엘리오가 고개를 들자 마크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친절한 미소가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빛났다.
"뭘 원해?"
엘리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는 마크를 신뢰하지 않았다.
마크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엘리오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흥미로운 패션 선택이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얀 머리가 유행인가?"
엘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크가 왜 여기 왔는지 궁금했다.
"무슨 볼일이야?"
마크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네가 궁금해. 특히 네가 엘리나와 어떤 관계인지."
엘리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건 네 관심사가 아니야."
마크의 미소가 더 넓어졌다.
"아, 하지만 그래. 엘리나는 내 관심사야. 그리고 네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엘리오는 마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엘리나는 네 소유물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어."
마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지. 하지만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하길 바라. 그리고 솔직히, 너는 그녀에게 좋은 선택이 아니야."
엘리오는 화가 났지만, 감정을 억제했다.
"그건 그녀가 결정할 일이야."
마크는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있었지만, 그 눈빛은 위협적이었다.
"조심해, 엘리오. 너는 지금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어."
그는 돌아서서 카페를 나갔다. 엘리오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마크의 말은 분명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엘리오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엘리나를 지켜야 했다.
오후 수업을 마친 후, 엘리오는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 약속을 준비했다. 그는 가장 깔끔한 옷을 골랐다. 오늘 밤은 중요한 밤이었다. 그는 엘리나에게 모든 것을 말할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은 더 눈에 띄게 되었고, 얼굴의 미세한 주름도 더 뚜렷해졌다. 그는 이제 마치 20대 후반의 남자처럼 보였다.
"이게 정말 나인가?"
엘리오는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는 엘리나를 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7시, 그는 캠퍼스 북문 앞에 도착했다. 엘리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 봄밤의 공기는 차갑고 상쾌했다. 별들이 하나둘 밤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다렸어요?"
엘리오가 돌아보자 엘리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단순하지만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긴 갈색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아니요, 방금 왔어요."
엘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엘리나의 존재만으로도 그의 모든 고통이 잊혀졌다.
"어디로 갈까요?"
엘리나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음악적이었다.
"캠퍼스 근처에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어요. 거기 어때요?"
엘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엘리오,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요."
엘리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엘리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든지 물어봐요."
엘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다.
"당신... 정말 괜찮은 거예요? 당신 모습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가끔 당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엘리오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것이 진실을 말할 기회였다.
"사실은... 제가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들은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엘리오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그녀에게 자신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미래로부터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엘리나, 당신이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때, 갑자기 엘리오의 시야가 흐려졌다. 극심한 두통이 그를 덮쳤다. 그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엘리오! 괜찮아요?"
엘리나는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엘리오는 벤치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의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엘리나... 나는..."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는 엘리나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그녀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들었다.
엘리오가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기계 소리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드디어 깨어났군요."
도슨 교수가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엘리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대학 병원이에요. 당신이 공원에서 쓰러졌어요. 엘리나가 구급차를 불렀죠."
엘리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실은 작고 조용했다. 창밖으로는 밤하늘이 보였다.
"엘리나는요?"
도슨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방금 커피를 사러 갔어요. 그녀는 당신이 입원한 이후로 계속 여기 있었어요."
엘리오는 감동을 느꼈다. 엘리나가 그를 걱정해주다니.
"의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도슨 교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당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해요. 당신의 몸은 마치 급속도로 노화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요. 그들은 더 많은 검사를 원하지만..."
엘리오는 알았다. 그의 상태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도슨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당신이 계속 이렇게 시간을 되돌린다면... 몇 달, 아마도 일 년?"
엘리오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인생이 이렇게 짧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엘리나를 구했으니까.
"교수님, 제가 엘리나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까요?"
도슨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에요. 하지만 그녀가 당신을 정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엘리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두 잔의 커피가 들려 있었다. 엘리오가 깨어난 것을 보자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번졌다.
"엘리오! 깨어났군요!"
그녀는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병상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그녀가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슨 교수는 조용히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엘리오."
교수는 엘리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병실을 나갔다. 이제 병실에는 엘리오와 엘리나만 남았다.
"얼마나 오래 여기 있었어요?"
엘리오가 물었다. 엘리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이 쓰러진 이후로 계속요. 정말 걱정했어요."
엘리오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엘리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의사들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대요. 그들은 당신의 몸이 이상하게 빠르게 노화하고 있다고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엘리오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진실을 말할 때였다.
"엘리나, 내가 당신에게 말하려 했던 것... 그건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예요."
엘리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엘리오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엘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뭐라고요?"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이미 여러 번 그렇게 했어요.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엘리나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나를 구한다고요? 무슨 말이에요?"
엘리오는 모든 것을 말했다. 겨울에 그녀가 마크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은 것, 그가 극도의 슬픔 속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발견한 것, 그리고 그 후 여러 번 그녀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 것까지.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내 몸은 조금씩 노화해요. 내 수명이 줄어드는 거죠."
엘리나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엘리오... 그건..."
"미쳤다고 생각하죠? 이해해요.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엘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그냥... 너무 놀라서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그럼 당신의 하얀 머리카락과 노화 증상은..."
"내가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생기는 대가예요."
엘리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럼... 당신은 나 때문에 자신의 수명을 희생하고 있는 거예요?"
엘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이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엘리나는 갑자기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희생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나를 거의 모르잖아요."
엘리오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다리는 약했지만, 그녀에게 가기 위해 힘을 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알았어요. 당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엘리나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건 너무해요. 당신의 인생을 희생하다니..."
엘리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선택한 거예요. 그리고 난 후회하지 않아요."
엘리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그를 껴안았다.
"바보같은 사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엘리오는 그녀를 꼭 안았다. 그는 그녀의 향기, 그녀의 온기, 그녀의 모든 것을 느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엘리나는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져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당신의 상태를 되돌릴 방법은 없나요?"
엘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도슨 교수님이 연구 중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엘리나의 눈에 결심이 서렸다.
"그럼 우리가 찾아야 해요. 당신을 구할 방법을."
엘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엘리나의 결심에 감동받았다.
"함께라면, 어쩌면..."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병실의 불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창밖의 세계가 이상하게 왜곡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느려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엘리나가 놀라서 물었다. 엘리오는 경계심을 느꼈다.
"시간의 수호자..."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 순간, 병실의 공기가 진동하며 한 형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윤곽은 흐릿하고 불안정했다. 마치 시간 자체가 구현된 것 같았다.
"엘리오 제임스 윌슨."
그 존재의 목소리는 마치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당신이 시간의 수호자군요."
엘리오가 말했다. 그는 엘리나를 보호하듯 그녀 앞에 섰다.
"그래. 나는 시간의 흐름을 지키는 자다."
시간의 수호자는 엘리오와 엘리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가 시간을 계속 조작하고 있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어."
엘리오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시간의 수호자는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사랑. 인간들이 항상 그 이유를 대지."
그는 다시 엘리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 네가 시간을 조작한 대가로, 너는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고 있어."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시간의 수호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형체가 흔들리며 변화했다.
"네 결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곧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정상적인 삶을 살거나, 현재를 유지하되 남은 생명이 얼마 없음을 받아들이거나."
엘리나가 앞으로 나섰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그를 구할 방법은?"
시간의 수호자는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어렸다.
"네 별자리 문신.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야."
엘리나는 자신의 목에 있는 별자리 문신을 만졌다.
"이건 그냥... 어린 시절 사고 후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한 거예요."
"그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문신은... 시간의 균형자의 표식이다."
엘리오와 엘리나는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간의 균형자라고요?"
시간의 수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너희의 만남, 엘리오의 능력, 그리고 네 문신까지. 이것은 우연이 아니야."
그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너희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사라졌다. 병실의 불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시간도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엘리오와 엘리나는 충격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게 뭐였죠?"
엘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의 수호자예요. 그리고 그가 말한 시간의 균형자... 당신의 문신..."
엘리나는 자신의 문신을 다시 만졌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
엘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도슨 교수님이 알지도 몰라요. 그에게 물어봐야 해요."
엘리나는 엘리오의 손을 잡았다.
"함께 알아내요. 그리고 당신을 구할 방법도 찾을 거예요."
엘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엘리나의 결심에 감동받았다.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창밖으로는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제 함께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