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과거의 그림자**
새벽녘의 희미한 빛이 레이첼의 아파트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마커스의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손에 쥔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간결한 문장이 그녀의 온 세상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창백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던 레이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결심한 듯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FBI 요원 클라크의 번호를 눌렀다.
"클라크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항상 그렇듯 차분했다.
"클라크 요원님, 레이첼 앤입니다. 제 아파트에서... 메시지를 발견했어요. 마커스의 메시지요."
한 시간 후, 레이첼의 아파트는 FBI 요원들로 가득 찼다. 클라크는 증거 봉투에 조심스럽게 쪽지를 넣으며 레이첼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의 깊게 패인 눈가 주름은 오랜 세월 범죄와 마주해온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앤 씨, 2년 전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클라크가 질문했다.
레이첼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 햇살이 도시의 고층 빌딩들 사이로 번져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미 진술서에 모두 적혀 있잖아요," 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습니다." 클라크는 공책을 꺼내며 말했다.
레이첼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날 밤... 저는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어요.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저를 덮쳤죠."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다음 기억나는 건 제가 창고에 묶여 있었다는 거예요. 마커스가... 그는 저를 보며 웃고 있었어요. 다른 희생자들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제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죠."
클라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메모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으셨죠? 마커스의 다른 희생자들은 모두..."
"모르겠어요." 레이첼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묶인 것도 풀려 있었고요. 그냥... 도망쳤어요."
클라크의 눈에 의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마커스 같은 치밀한 살인마가 단순히 피해자를 놓아주지는 않았을 텐데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레이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냥 기회가 있어서 도망친 거예요.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거잖아요!"
클라크는 잠시 침묵했다. "앤 씨, 당신 주변에 새로운 사람이 있나요? 특히 최근에 가까워진 사람?"
레이첼은 순간 에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깊은 눈동자와 항상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아니요," 그녀는 거짓말했다. "특별히 없어요."
클라크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분간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즉시 연락주세요."
레이첼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크가 떠난 후, 그녀는 창문 앞에 서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딘가에 마커스가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이노베이트 본사 건물은 아침 햇살 아래 유리와 강철의 조화로 빛나고 있었다. 레이첼은 로비를 지나며 경비원에게 가볍게 인사했지만, 그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사무실 층으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 아래, 그녀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회사를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해.'
사무실에 도착하자 소피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괜찮아?" 소피아가 레이첼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그녀의 큰 갈색 눈동자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냥 피곤해," 레이첼이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
"10시에 마케팅 팀 미팅, 12시에 투자자 컨퍼런스 콜, 그리고 오후에는..."
소피아의 목소리가 레이첼의 귀에 흐릿하게 들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사무실 구석에 서 있는 에단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다른 인턴들과 대화하고 있었지만, 레이첼이 들어오는 순간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레이첼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에단이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는 것 같았다. 그의 깊은 청색 눈동자는 수백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듯했다.
"레이첼?" 소피아의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미안, 잠깐 생각이 다른 데로 갔네," 레이첼이 서둘러 대답했다. "모든 일정 확인했어. 내 사무실에서 작업할게."
레이첼은 사무실로 향하며 에단을 피해 걸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로 그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 문을 닫자마자 레이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가로 다가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그녀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에단이 나타났다. 그는 평소와 같은 단정한 셔츠에 어두운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존재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앤 대표님," 그가 공손하게 말했다. "어제 저녁 보고서 완성했습니다. 검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이첼은 그를 마주 보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책상에 놓고 가세요."
에단은 천천히 다가와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레이첼은 이상하게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마치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에단이 조용히 물었다.
레이첼은 마지못해 그를 바라보았다. 에단의 얼굴은 완벽하게 조각된 대리석 조각상 같았다. 창백한 피부와 뚜렷한 광대뼈, 그리고 깊은 눈동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네, 괜찮아요,"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냥 좀 피곤할 뿐이에요."
에단은 잠시 그녀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움은 필요 없어요," 레이첼이 말을 잘랐다. "그냥 당신의 업무에 집중하세요, 나이트 씨."
에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레이첼은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왜 에단의 존재가 그녀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인턴일 뿐인데, 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오후가 되자 레이첼의 두통이 심해졌다. 그녀는 약을 삼키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갑자기 2년 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두운 창고. 손목을 파고드는 밧줄의 감각. 마커스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는 목소리.
"너는 특별해, 레이첼.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그래서 네가 마지막이야."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 마커스의 비명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 너무 빨리 지나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누군가가 그녀를 구했다.
레이첼은 눈을 번쩍 떴다. 그 얼굴... 왜 지금까지 기억나지 않았을까?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에 상상하는 것일 테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레이첼이 대답했다.
소피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5시야. 다들 퇴근하고 있어."
"벌써?" 레이첼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소피아가 제안했다.
레이첼은 잠시 고민했다. 친구와 함께라면 마커스에 대한 생각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그녀가 미소 지었다. "내가 살게."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자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미 퇴근한 상태였다. 하지만 멀리서 에단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저 인턴, 정말 열심히 일하네," 소피아가 속삭였다. "근데 좀 이상해. 항상 너를 지켜보는 것 같아."
레이첼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아니, 진짜로. 네가 없을 때도 항상 네 사무실 쪽을 보고, 네 일정을 묻고... 솔직히 좀 소름 돋아."
레이첼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피아의 말이 그녀의 의심을 더욱 키웠다.
"그냥 가자,"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순간, 레이첼은 에단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영혼을 꿰뚫는 것 같았다.
---
바에서 몇 잔의 와인을 마신 후, 레이첼은 조금 긴장이 풀렸다. 소피아는 회사 소식과 가벼운 가십거리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래서 김 이사가 그 투자자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소피아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레이첼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와인잔을 돌리며 물었다.
"소피아, 에단에 대해 뭐 더 알아낸 거 있어?"
소피아는 표정이 진지해졌다. "사실... 그의 이력서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해봤어. 이상한 점이 많아."
"어떤 점?"
"학력이랑 경력에 구체적인 날짜가 없어. 그리고 추천인 연락처도 모두 확인이 안 돼. 마치... 허구의 인물처럼 느껴져."
레이첼의 손이 와인잔을 꽉 쥐었다. "그럼 왜 우리가 그를 채용했지?"
"그의 기술 테스트 결과가 너무 뛰어났어. 인사팀이 다른 부분은 넘어간 것 같아."
레이첼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에단의 수상한 배경, 그리고 마커스의 갑작스러운 재등장. 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을까?
"레이첼," 소피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야? 정말 괜찮은 거야?"
레이첼은 친구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피아는 대학 시절부터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마커스가 돌아왔어," 그녀가 마침내 고백했다.
소피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 어떻게... 언제?"
"어젯밤에 메시지를 받았어. FBI에 신고했지만..."
"오, 레이첼," 소피아가 그녀를 꽉 안았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혼자 있으면 안 돼. 오늘 밤 우리 집에서 자."
레이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경찰이 내 아파트 주변을 감시하고 있어."
"그래도 불안해. 제발, 적어도 오늘 밤만이라도."
레이첼은 친구의 진심 어린 걱정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마워, 소피아. 하지만 정말 괜찮아. 내가 이번에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두 사람은 바를 나와 택시를 잡았다. 소피아를 먼저 내려준 후, 레이첼은 자신의 아파트로 향했다. 택시 창문으로 어두운 도시의 불빛들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다시 2년 전의 기억에 잠겼다.
마커스가 쓰러지고, 그녀를 구한 그 그림자... 왜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마커스는 그녀만 살려두었을까?
택시가 그녀의 아파트 앞에 멈추었다. 레이첼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내렸다. 약속대로 경찰차 한 대가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아파트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 레이첼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복도를 지나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 서자, 그녀는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레이첼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갑자기 문이 완전히 열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앤 대표님."
에단이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어두운 복도에서 유령처럼 빛났다.
"나이트 씨?" 레이첼이 놀라서 물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에단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레이첼의 목소리가 떨렸다.
"설명드릴게요," 에단이 말했다. "하지만 먼저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복도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레이첼은 그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당신이 마커스와 연관되어 있나요?"
에단의 눈이 어두워졌다. "그와 정반대입니다. 제가 당신을 보호하러 왔어요."
"보호라고요? 당신이 누군데..."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딩' 소리가 들렸다. 에단의 표정이 긴장되었다.
"들어가세요, 지금 당장," 그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레이첼은 망설였지만, 에단의 눈에서 진심 어린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에단이 뒤따라 들어와 문을 잠갔다.
"설명해주세요," 레이첼이 요구했다. "당신은 누구고, 왜 내 아파트에 침입한 거죠?"
에단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수백 년 동안 위험을 감지해온 포식자 같았다.
"당신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마커스는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을 원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로."
"무슨 이유요?" 레이첼이 물었다.
에단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빛났다.
"당신의 혈통 때문입니다."
레이첼은 혼란스러웠다. "내 혈통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2년 전, 당신은 마커스에게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에단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누군가가 당신을 구했죠."
레이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이 바로 저였으니까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레이첼은 에단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자신을 구했다고? 하지만 2년 전 그녀는 에단을 알지도 못했다.
"거짓말이에요,"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당신은 몇 주 전에 우리 회사에 온 인턴일 뿐이에요."
에단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제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당신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는 수백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레이첼은 뒤로 물러섰다.
"나가주세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밖에 있는 경찰관들은 이미 마커스의 부하들에게 당했을 겁니다," 에단이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당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그때 창밖에서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에단은 즉시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왔군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첼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커스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뒤에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그가 창문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레이첼은 그의 눈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푸른색이었던 눈동자가 갑자기 붉게 빛났다. 그의 피부는 더욱 창백해졌고,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레이첼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충격으로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에단은... 인간이 아니었다.
창문이 갑자기 산산이 부서지며 검은 형체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에단은 놀라운 속도로 움직여 그 형체와 맞섰다.
"오랜만이군, 마커스,"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어둠 속에서 마커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레이첼의 악몽에 등장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날카로운 광대뼈와 깊게 패인 눈, 그리고 잔인한 미소.
"네가 또 방해하러 왔군," 마커스가 비웃었다. "지난번엔 운이 좋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을 거야."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레이첼은 벽에 붙어 공포에 떨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커스가 갑자기 에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가구가 부서지고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첼은 기회를 보아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마커스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도망가려고?" 그가 비웃었다. "우리 게임은 이제 시작인데."
그가 손을 뻗어 레이첼의 목을 잡으려는 순간, 에단이 번개처럼 나타나 마커스를 밀쳐냈다. 두 사람은 다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레이첼, 도망치세요!" 에단이 소리쳤다.
레이첼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달려내려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에단은 무엇인가? 마커스와 그는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왜 자신을 노리는 걸까?
로비에 도착한 레이첼은 경비원을 찾았지만, 데스크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갑자기 마커스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군," 그가 미소 지었다.
레이첼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원하는 게 뭐예요?"
"당신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는군요," 마커스가 말했다. "당신의 혈액에는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당신의 조상들은 우리 같은 존재를 수백 년 동안 사냥해왔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레이첼이 말하려는 순간, 마커스가 번개같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제 당신의 혈액으로 내 의식을 완성할 시간이군요."
그가 레이첼을 끌고 가려는 순간, 에단이 로비로 뛰어들었다. 그의 셔츠는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상처가 있었지만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놓아줘, 마커스,"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당신은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는군요."
마커스는 비웃었다. "오히려 당신이 모르는 것 같군. 그녀의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말해주었나요?"
레이첼은 혼란스러웠다. "내 어머니? 무슨..."
그때 갑자기 건물 밖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는 잠시 주의가 산만해졌고, 에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초인적인 속도로 마커스에게 달려들어 그를 밀쳐냈다.
"이번에는 도망쳤군," 마커스가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곧 다시 만날 거야."
그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에단은 레이첼에게 달려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치지 않았어요?"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레이첼은 그를 밀쳐냈다. "당신... 당신은 뭐죠?"
에단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은 이제 다시 정상적인 푸른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존재입니다," 그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 있어요."
"왜요? 왜 나를?"
"당신의 혈통 때문입니다. 당신은 특별해요, 레이첼. 당신의 어머니처럼."
레이첼은 혼란스러웠다. "내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에단의 눈에 슬픔이 스쳤다. "그게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군요."
밖에서 경찰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단은 레이첼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곧 모든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약속해요."
그는 레이첼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수백 년의 세월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나를 믿어주세요, 레이첼.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경찰들이 로비에 들어오기 직전, 에단은 놀라운 속도로 사라졌다. 레이첼은 혼자 남겨져 경찰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찼다. 에단은 무엇인가? 마커스는 왜 자신을 노리는가? 그리고 그가 말한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삶이 영원히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
그날 밤, 레이첼은 경찰의 보호 아래 호텔 방에 머물렀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되새겼다.
에단의 붉게 빛나는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 마커스와의 초인적인 싸움. 그리고 그들이 말한 그녀의 혈통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뱀파이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 단어를 발음해보았다. '에단은 뱀파이어야.'
그것은 미친 생각처럼 들렸지만, 오늘 본 것을 다른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에단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초자연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마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니라 뱀파이어였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이유로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레이첼은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로켓을 꺼내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저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만을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말해주었나요?"
마커스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항상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창문 너머로 달빛이 비쳐 들어왔다. 레이첼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딘가에 에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커스도.
그녀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에단을 믿고 그의 도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를 피하고 혼자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가?
레이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그녀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과거, 그녀의 혈통, 그리고 그녀의 운명에 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첫 번째 시즌의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더 큰 위험과 비밀, 그리고 예상치 못한 동맹들일 것이다.
창밖의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붉은 눈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에단은 멀리서 레이첼을 지켜보며 다짐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200년 전 그녀의 조상에게 한 약속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그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