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회사 건물 내 사무실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른 아침 햇살이 레이첼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투자자 미팅을 앞두고 마지막 자료를 검토하던 레이첼은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난 며칠간 계속된 불안감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마커스의 메시지를 발견한 후, 그녀는 매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더욱 불안한 것은 그 '누군가'가 마커스일 수도, 에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단이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경비병처럼 서 있던 모습은 그녀에게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더 큰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대체 누구지? 왜 나를 지키고 있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던 레이첼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소피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의 밝은 미소 대신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레이첼, 새로운 직원이 도착했어. 잭 테일러. 오늘부터 마케팅팀에서 일할 사람이야."
레이첼은 미간을 찌푸렸다. "새 직원? 내가 승인한 적 없는데?"
"인사팀에서 이미 처리했대. 제이슨이 승인했다고."
레이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연인이자 현재 회사의 CFO인 제이슨은 종종 그녀의 결정권을 우회하는 행동을 했다. 그것이 그들의 관계가 악화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알았어. 그를 내 사무실로 보내줘."
소피아가 나간 후, 레이첼은 컴퓨터에서 재빨리 잭 테일러의 이력서를 찾아보았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마커스의 위협 이후 그녀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몇 분 후, 문이 다시 열리고 잭 테일러가 들어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단정한 슈트 차림에 친절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첼은 그의 눈에서 무언가 계산적인 빛을 감지했다.
"안녕하세요, 앤 대표님. 잭 테일러입니다. 이노베이트에서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이첼은 공식적인 미소로 응답했다. "환영합니다, 테일러 씨. 갑작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네요."
"네, 기회가 갑자기 생겼어요. 귀사의 혁신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레이첼은 잭이 자신을 관찰하는 방식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존경심을 넘어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했지만, 어딘가 준비된 듯한 느낌이었다.
면담이 끝나고 잭이 나간 후, 레이첼은 소피아에게 그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막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에단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오늘의 에단은 어제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검은색 슬림핏 셔츠와 진한 청바지 차림의 그는 평소의 조용하고 수수한 이미지와는 달리 날카로운 눈빛으로 실내를 살폈다. 그의 창백한 피부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도 거의 빛나는 듯했고, 검은 머리카락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이트 씨?" 레이첼이 물었다.
에단은 문을 닫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방금 나간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감에 레이첼은 경계심을 느꼈다. "새로운 마케팅 직원이에요. 잭 테일러라고 하던데."
에단의 눈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그를 조심하세요."
"무슨 말이에요? 그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거죠?"
에단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에너지가... 좋지 않습니다."
레이첼은 미간을 찌푸렸다. "에너지요? 무슨 영적인 얘기를 하는 건가요?"
"그냥 직감입니다. 하지만 제 직감은 대체로 맞는 편이에요."
에단의 진지한 표정에 레이첼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잭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그런데 어젯밤에 제 아파트 앞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예요?"
에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가 부드러워졌다. "마커스가 당신을 위협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안전이 걱정됐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죠?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에단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프로필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 조각상처럼 완벽했다. "당신을 지켜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화는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중단되었다. 투자자 미팅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중에 더 이야기해요. 지금은 미팅 준비를 해야 해요." 레이첼이 말했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특히 테일러 씨 주변에서는."
그가 나간 후, 레이첼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에단의 경고가 단순한 질투인지, 아니면 진짜 위험에 대한 경고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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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중요한 투자자 미팅이 시작되었다. 레이첼은 회의실 앞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의 프레젠테이션은 회사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녀는 감정을 정리하고 전문가적인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회의실 안에는 다섯 명의 투자자들이 앉아 있었고, 소피아와 제이슨이 이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잭 테일러도 그곳에 있었다.
"테일러 씨, 이 미팅에 당신이 참석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레이첼이 차분하게 말했다.
제이슨이 끼어들었다. "내가 초대했어. 그는 마케팅 전문가로서 우리의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한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 거야."
레이첼은 불쾌함을 감추고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레이첼은 잭이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불편한 것은 그가 종종 무언가를 메모하는 척하면서 몰래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중반, 레이첼이 회사의 새로운 보안 프로토콜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잭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앤 대표님, 이 새로운 보안 시스템이 2년 전 발생한 데이터 유출 사고와 같은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까요?"
레이첼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데이터 유출 사고는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내부 문제였다. 새로 합류한 직원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테일러 씨, 그 정보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레이첼이 차분히 물었다.
잭은 미소를 지었다. "업계에서 떠도는 소문입니다. 정확한 내용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레이첼은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질문에 답했지만, 내심 불안감이 커졌다. 미팅이 끝나고 투자자들이 나간 후, 그녀는 제이슨에게 다가갔다.
"잭을 어떻게 알게 됐어? 그의 배경을 제대로 조사했어?"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훌륭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야."
"그가 우리 회사의 내부 정보를 알고 있어. 그것도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업계에는 소문이 돌기 마련이야.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
제이슨이 회의실을 나가자, 소피아가 레이첼에게 다가왔다. "잭에 대해 조사해봤어.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여. 하지만..."
"하지만?"
"그의 이력에 몇 가지 공백 기간이 있어. 그리고 그가 일했다는 회사 중 두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레이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속 그를 조사해줘. 그리고 당분간 그와 단둘이 있지 마."
소피아가 나간 후, 레이첼은 피로감을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에단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에! 놀랐잖아요." 레이첼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에단이 말했다. 그의 눈은 평소보다 더 어둡고 날카로워 보였다. "미팅은 어땠습니까?"
"괜찮았어요. 하지만 잭이 우리 회사의 비공개 정보를 알고 있더군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그는 수상해요."
에단의 턱이 경직되었다. "그를 피하세요. 가능하면 그와 단둘이 있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거죠? 솔직히 말해주세요."
에단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에는 내적 갈등이 역력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커스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레이첼은 숨을 들이켰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말했듯이, 직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마커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어요."
레이첼이 더 묻기도 전에,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FBI 요원 클라크였다.
"클라크 요원이에요. 받아야 해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조심하세요. 오늘 밤 혼자 있지 마십시오."
레이첼이 전화를 받는 동안, 에단은 조용히 사무실을 나갔다. 클라크는 마커스의 메시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했다고 했다. 그는 오후에 레이첼의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레이첼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위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에단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든, 적어도 지금은 그가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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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클라크 요원이 레이첼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여전히 차분하고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의 눈에는 걱정의 기색이 역력했다.
"앤 씨, 마커스의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그가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 "메시지에 사용된 잉크는 특수 제작된 것으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종류입니다. 그리고 종이에서 발견된 지문은... 마커스의 것이 맞습니다."
레이첼은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정말 그가 돌아온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걱정되는 것은, 그가 당신의 아파트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보안 시스템은 훌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침입했는지 의문입니다."
레이첼은 침을 삼켰다. "내부자의 도움이 있었을까요?"
클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나요?"
레이첼은 잭에 대해 생각했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에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특별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어요."
"앤 씨, 당신의 안전이 우려됩니다. 임시로 경찰 보호를 받는 것이 어떨까요?"
레이첼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합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고,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낼 계획입니다."
클라크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더 강요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즉시 연락해주세요. 24시간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클라크가 떠난 후, 레이첼은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밤 네 집에서 지내도 될까?"
"물론이지! 무슨 일이야?"
"나중에 설명할게. 먼저 몇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가야 해."
전화를 끊고 레이첼은 자신의 노트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잭이 들어왔다.
"앤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세요? 마케팅 전략에 대해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레이첼은 경계심을 느꼈지만, 표정을 감추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요. 내일 아침에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잭의 눈이 잠시 차갑게 빛났다가 다시 친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물론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가 나간 후, 레이첼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에단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서둘러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사무실을 떠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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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한 후 레이첼도 사무실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안에 에단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직 회사에 있었어요?" 레이첼이 물었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시나요?"
"아니요, 오늘은 소피아 집에서 지낼 거예요."
"현명한 결정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레이첼은 불안감을 느꼈다. 주차장은 어둡고 조용했으며, 그녀의 차는 구석에 주차되어 있었다.
"함께 가드릴게요." 에단이 말했다.
평소라면 레이첼은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그의 제안이 고마웠다. 두 사람이 그녀의 차로 걸어가는 동안, 레이첼은 에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당신이 마커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했죠. 어떻게 그를 알게 된 거예요?"
에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말하기에는..."
그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에단은 경계하는 자세로 주변을 살폈다.
"무슨 일이에요?" 레이첼이 물었다.
"누군가 있어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주차장의 불이 모두 꺼졌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레이첼은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에단의 팔을 움켜쥐었다.
"내 손을 놓지 마세요." 에단이 속삭였다.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소리였다. 레이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차 열쇠 주세요." 에단이 말했다.
레이첼이 열쇠를 건네자, 에단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보호하며 천천히 차를 향해 이동했다. 발자국 소리는 계속 가까워졌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에단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그것을 피했다. 그것은 날카로운 금속 물체였고, 근처 기둥에 꽂혔다.
"뛰세요!" 에단이 소리쳤다.
두 사람은 레이첼의 차를 향해 달렸다. 에단이 재빨리 문을 열고 레이첼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잭이었다.
"안녕하세요, 앤 대표님. 벌써 가시나요?" 잭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차갑고 위협적이었다.
에단은 차 시동을 걸고 급발진했다. 잭은 놀라운 속도로 옆으로 뛰어 피했다. 백미러로 볼 때,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기이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그가 정말 마커스와 연결되어 있나요?" 레이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합니다. 그는 마커스의 부하입니다." 에단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소피아의 집으로 가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들이 당신의 친구들을 조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죠?"
"제가 안전한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신뢰해주시겠어요?"
레이첼은 잠시 망설였다. 에단은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를 신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신뢰할게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도시 외곽을 향해 차를 몰았다. 레이첼은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며칠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마커스의 귀환, 에단의 비밀스러운 정체, 그리고 이제 잭의 배신까지.
"에단,"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나를 돕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어요."
에단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프로필은 도로변 가로등 불빛에 간헐적으로 비춰졌다. 그의 얼굴은 마치 대리석으로 조각된 것처럼 완벽했고, 그 눈에는 수세기의 경험이 담긴 듯했다.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게요," 그가 마침내 말했다. "하지만 먼저 안전한 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당신의 세계관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레이첼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진실을 마주하는 것뿐이었다.
"준비됐어요.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에단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걱정과 동시에 일종의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입니다, 레이첼 앤."
그들은 도시의 불빛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레이첼은 이 여정이 그녀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의 삶은 이제 영원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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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이 차를 세운 곳은 도시 외곽의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아파트처럼 보였지만, 내부에 들어서자 레이첼은 이곳이 일반적인 주거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최첨단 보안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내 안전가옥 중 하나입니다." 에단이 설명했다. "마커스와 그의 부하들은 이곳을 모릅니다."
레이첼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가구들과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눈길을 끈 것은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책장이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가죽 장정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당신은 독서가인가 봐요." 레이첼이 말했다.
에단은 작게 미소 지었다.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그는 레이첼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고, 주방으로 가서 두 잔의 음료를 가져왔다. 레이첼에게는 따뜻한 차를, 자신에게는 붉은색 액체가 담긴 잔을 건넸다.
"와인인가요?" 레이첼이 물었다.
에단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니요. 이건... 제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레이첼은 그 붉은 액체를 다시 보았고, 갑자기 이해했다. "그건... 피인가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누구인지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레이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깊고 어두웠으며,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지혜와 슬픔을 담고 있었다.
"저는 뱀파이어입니다, 레이첼. 300년 이상 살아왔죠."
레이첼은 그 말을 듣고도 놀랍게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단의 창백한 피부, 초인적인 반사 신경, 그리고 그의 눈에 담긴 세월의 무게.
"그래서 햇빛을 피하고, 음식을 먹지 않고, 그 놀라운 속도와 힘이 있는 거군요." 그녀가 말했다.
에단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당신은 정말 놀라운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제가 미쳤다고 생각할 텐데요."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했다. "2년 전 연쇄살인마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후로, 저는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에단은 감사의 표정을 지었다. "마커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닙니다. 그도 뱀파이어입니다, 하지만 저와는 다른 종류죠."
"다른 종류라니요?"
"뱀파이어 사회에도 다양한 계파와 신념 체계가 있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은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려 노력하죠. 우리는 동물의 피나 기증받은 혈액으로 생존합니다. 하지만 마커스와 같은 자들은 인간을 먹이나 장난감으로만 여깁니다. 그들은 특히 특별한 혈통을 가진 인간들을 노립니다."
"특별한 혈통이요?"
에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의 가족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레이첼은 미간을 찌푸렸다. "많지 않아요. 저는 그룹홈에서 자랐고, 제 부모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어요."
"당신의 혈통은 매우 특별합니다, 레이첼. 당신의 조상들은 뱀파이어 사냥꾼이었어요. 그들의 혈액에는 뱀파이어에게 해로운 특성이 있었죠. 이 특성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희석되었지만, 당신에게는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마커스가 당신을 노리는 겁니다. 그는 당신의 혈통을 끊으려 하고 있어요."
레이첼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이 새로운 정보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2년 전에 그가 나를 공격했던 거군요. 하지만 왜 그때 나를 죽이지 않았죠?"
에단은 잠시 망설였다. "그때... 제가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요? 하지만 우리는 몇 주 전에 처음 만났잖아요."
"아니요, 레이첼. 우리는 2년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이 마커스의 공격을 받던 그 밤에요. 제가 그를 막았고, 당신은 기절해 있었죠. 그 후 저는 당신을 지켜봐 왔습니다. 마커스가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레이첼은 갑자기 악몽처럼 떠오르는 기억 조각들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그녀를 구하는 그림자 같은 인물, 차가운 손이 그녀의 상처를 만지는 감각, 그리고 그 눈... 에단의 눈.
"당신이었군요." 그녀가 속삭였다. "제 악몽에 항상 나타나는 그 눈... 당신의 눈이었어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당신을 혼란스럽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마커스가 돌아오는지 확인하려 했죠. 그런데 그가 정말 돌아왔고, 이번에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왔습니다."
레이첼은 이 모든 정보를 소화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세계관은 완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존재, 그녀의 특별한 혈통, 그리고 에단이 2년 동안 그녀를 지켜봐 왔다는 사실까지.
"왜 당신이 나를 보호하려 하는 거죠? 당신과 같은 종족인 마커스에 맞서서요?"
에단의 눈에 깊은 감정이 스쳤다. "모든 인간이 같지 않듯, 모든 뱀파이어도 같지 않습니다. 마커스는 제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죠.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당신에게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레이첼. 제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무언가가요. 용기, 결단력,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 저는 당신이 살아남기를 원합니다."
레이첼은 에단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미친 듯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맞는 것 같았다. 마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가 물었다.
"마커스를 막아야 합니다. 그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험합니다. 그리고 잭과 같은 그의 부하들도 처리해야 하죠."
"FBI에 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겠죠?"
에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믿을 것 같나요? 뱀파이어와 사냥꾼의 혈통에 대한 이야기를요?"
레이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네요. 그럼 우리 둘이서 마커스와 그의 부하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군요."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도 동맹들이 있어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현관 벨이 울렸다. 에단은 일어나 문을 열었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 큰 남자였으며, 에단처럼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레이첼, 이쪽은 마커스입니다. 제 오랜 친구이자 동맹입니다."
마커스는 레이첼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앤 씨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단이 당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어요."
레이첼은 약간 당황하며 인사를 받았다. 마커스는 에단에게 돌아보며 말했다. "잭을 추적했어. 그는 도시 남쪽의 창고 지역으로 돌아갔어. 아마 그곳이 그들의 본거지인 것 같아."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우리는 그들의 위치를 알게 되었군."
마커스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회사에 있는 잭 말고도 다른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심하세요."
레이첼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소피아! 그녀에게 연락해야 해요. 내가 오늘 밤 그녀의 집에 갈 거라고 말했거든요. 지금쯤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해도 좋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녀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하세요."
레이첼은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설명하고, 소피아에게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소피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레이첼의 말을 신뢰했다.
전화를 끊은 후, 레이첼은 에단과 마커스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뱀파이어 언어로 빠르게 대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레이첼이 물었다.
에단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커스... 연쇄살인마 마커스는 당신의 피를 이용해 특별한 의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의식이 성공하면, 그는 당신의 혈통이 가진 특별한 특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과 같은 혈통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뱀파이어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의식이 가능한가요?"
마커스가 대답했다. "전설에 따르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복잡한 의식이에요. 그가 성공한다면, 인간 세계와 뱀파이어 세계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레이첼은 갑자기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의 피가 그런 위험한 의식에 사용될 수 있다니. "그를 어떻게 막나요?"
에단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먼저 그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을 저지해야 해요. 하지만 그것은 내일의 일입니다. 오늘 밤은 당신이 쉬어야 합니다. 내일은 긴 하루가 될 테니까요."
마커스는 떠나기 전에 레이첼에게 말했다. "앤 씨, 당신의 혈통은 매우 특별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에요. 그리고 에단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그를 신뢰하세요."
마커스가 떠난 후, 레이첼은 에단에게 물었다. "당신 친구의 말이 사실인가요? 당신은 정말 나를 위해 그런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에단은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300년 이상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레이첼."
레이첼은 에단의 말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에단의 존재는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주었다. 300년 이상 살아온 뱀파이어가 그녀의 보호자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내일은 어떤 계획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우리는 잭을 통해 마커스의 위치를 확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회사 내부에 다른 스파이가 있는지 조사해야 해요. 하지만 지금은 쉬세요. 이곳은 안전합니다."
에단은 레이첼에게 게스트룸을 안내했다. 방은 편안하고 아늑했으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편안히 주무세요, 레이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레이첼은 침대에 앉아 오늘 하루의 사건들을 정리했다. 그녀의 삶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뱀파이어의 존재, 그녀의 특별한 혈통, 그리고 그녀를 노리는 초자연적 위협까지.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진실된 느낌이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레이첼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에단이 그녀 곁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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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시즌 1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장면으로, 레이첼이 에단의 정체와 자신의 특별한 혈통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이후 시즌에서는 레이첼이 자신의 혈통과 관련된 더 깊은 비밀을 발견하게 되며, 그녀의 어머니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뱀파이어 사냥꾼 조직 '빛의 수호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또한 에단의 과거에도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그가 18세기에 잃은 약혼녀 엘레나와 관련된 비극적 사건이 현재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마커스의 스승인 고대 뱀파이어 아드리안은 에단과 오랜 원한 관계에 있으며, 이는 시즌 2의 주요 갈등으로 발전한다.
소피아 역시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임이 암시되며, 그녀의 예지 능력은 앞으로의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FBI 요원 클라크는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비밀 부서와 접촉하게 되어, 레이첼과 에단의 중요한 동맹이 된다.
시즌 1의 남은 에피소드들에서는 레이첼과 에단이 마커스의 의식을 저지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감정적 유대가 깊어진다. 최종 대결에서 레이첼은 자신의 특별한 혈통에서 비롯된 능력을 발견하게 되며, 이는 시즌 2에서 더욱 발전하게 될 그녀의 힘의 시작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