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2071년 한 여름 밤, 테라 쉘터 외곽 경계선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짙은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바람이 불길하게 휘몰아쳤다. 11살 한지율은 부모님과 함께 외곽 경계선을 방문했다. 그의 작은 손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여기가 왜 위험한 거예요?" 지율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아버지는 무거운 표정으로 경계선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쉘터의 푸른 조명 아래 더욱 굳어 보였다. 턱선이 단단하게 긴장한 채로 말했다.
"저 너머에는 크리쳐들이 있단다. 인간을 사냥하는 괴물들."
어머니는 지율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데려왔지만, 평소에는 절대 이곳에 혼자 오면 안 돼. 알았지?"
지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경계선 너머의 어둠이 그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침입 경보! 모든 인원 대피하라! 반복한다, 모든 인원 대피하라!"
지율의 아버지는 즉시 통신기를 켰다. "여기는 한태영 순찰대장. 상황 보고 바람."
통신기에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리쳐 대규모 침입! 북쪽 경계선 붕괴! 모든 인원 즉시 철수하라!"
그 순간, 그들 주변의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그림자였다가, 점점 뚜렷한 형체로 변해갔다. 지율은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을 마주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듯하지만, 피부는 회색빛 비늘로 덮여 있었고, 눈은 붉게 빛났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달빛에 번뜩였다.
"지율아, 뒤로!"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는 즉시 무기를 꺼내 크리쳐들을 향해 겨눴다.
어머니는 지율을 자신의 뒤로 밀어넣었다. "도망쳐, 지율아! 쉘터 방향으로 뛰어!"
하지만 도망칠 틈도 없었다. 크리쳐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지율의 아버지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크리쳐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한 크리쳐가 그의 방어를 뚫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아빠!" 지율의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어머니는 지율을 감싸 안으며 크리쳐들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지율아, 네가 특별한 아이라는 걸 잊지 마. 언젠가 네가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크리쳐 하나가 그녀의 등을 할퀴었고, 지율의 품에서 그녀는 쓰러졌다. 따뜻한 피가 지율의 손을 적셨다.
극도의 공포와 분노가 지율의 내면을 뒤흔들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 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그를 압도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죽을 순 없어!'
그 순간, 지율의 내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의 주변에 갑자기 강력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처음에는 작은 바람이었지만,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다. 크리쳐들이 그 힘에 날려 나갔다. 지율의 눈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그의 손에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살아남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만이 그를 지배했다. 바람은 계속해서 강해졌고, 크리쳐들은 하나둘 날려 나갔다.
갑자기 지율의 목에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뜨거운 쇠막대기로 그의 피부를 지지는 것 같았다.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폭풍이 가라앉았을 때, 지율은 부모님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고대 언어로 쓰인 듯한 기호가 그의 피부에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지율은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스 협회장이었다. 키가 크고 위엄 있는 중년 남성으로, 그의 눈은 지율을 보자 놀라움으로 커졌다.
"이런..." 협회장이 지율의 목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표정은 충격과 경외,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협회장은 조심스럽게 지율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괜찮니, 아이야?"
지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협회장은 지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가 특별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는 지율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이제 괜찮아. 내가 너를 보호할게."
지율은 협회장의 품에 안겨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 복수의 씨앗이 심어졌다. 크리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그의 어린 가슴을 채웠다.
"왜... 왜 이런 일이..." 지율의 목소리는 떨렸다.
협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을 설명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그는 지율을 안고 쉘터 방향으로 걸어갔다. 뒤에는 부모님의 시체와 크리쳐들의 흔적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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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후, 이른 아침의 테라 쉘터는 인공 조명으로 가득 찼다. 20세가 된 한지율은 자신의 방 거울 앞에 서서 목에 새겨진 문양을 응시했다. 9년이 지났지만, 그 문양은 여전히 선명했다. 때때로 그것은 푸른빛을 발했고, 특히 그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지율은 검은색 특수부대 제복을 입었다. 오늘은 그의 첫 출근일이었다. 어스 협회장의 추천으로 이능력자 연합 특수부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지율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크리쳐들과 싸울 수 있게 됐어.'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펴고 집중했다. 작은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그의 손바닥 위에 형성되었다. 하지만 곧 그 바람은 통제를 벗어나 방 안의 물건들을 날려버렸다.
"젠장!" 지율은 손을 꽉 쥐며 바람을 멈추게 했다. 9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능력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방을 나섰다. 테라 쉘터의 복도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인류의 마지막 거점 중 하나인 테라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살고 있었다.
어스 협회 본부에 도착하자, 그곳은 이미 분주했다. 협회장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율아, 마침내 이 날이 왔구나." 협회장은 따뜻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9년 동안 협회장은 지율의 보호자이자 멘토였다.
"네, 회장님. 준비됐습니다." 지율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협회장은 지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특수부대는 쉬운 일이 아니야. 특히 네 이능력이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협회장은 깊은 눈으로 지율을 바라보았다. "난 네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야. 다만 네 감정 조절이 걱정될 뿐이지. 네 이능력은 감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넌 아직도 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품고 있지."
지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협회장의 말이 맞았다. 그는 여전히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었다.
"가자. 네 새 동료들을 소개해 줄게." 협회장은 말했다.
그들은 특수부대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이능력자들이 훈련 중이었다.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성이 물줄기를 공중에 띄우고 있었고, 젊은 소년은 손가락에서 전기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윤슬, 나인, 이리 와봐." 협회장이 불렀다.
물을 다루던 여성과 전기를 다루던 소년이 다가왔다. 윤슬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긴 검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처럼 부드럽고 우아했다. 나인은 열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으로, 짧게 깎은 머리와 호기심 많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은 한지율, 오늘부터 특수부대에 합류할 신입이야." 협회장이 소개했다.
윤슬은 지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이 지율의 목에 새겨진 문양에 잠시 멈추었을 때,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놀라움, 경계,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바람 이능력자군요." 윤슬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네." 지율은 짧게 대답했다.
나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율을 바라보았다. "와, 목에 있는 그거 뭐예요? 문신인가요?"
지율은 본능적으로 목을 가렸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
협회장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윤슬은 우리 부대의 베테랑이야. 물 이능력자지. 나인은 최연소 이능력자로, 전기를 다룰 수 있어. 윤슬, 지율의 훈련을 네가 담당해 줬으면 해."
윤슬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좋아, 이제 첫 임무 브리핑을 시작하지." 협회장이 말했다.
그들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테이블 위에는 테라 쉘터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몇몇 지점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최근 테라 쉘터 내에서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협회장이 설명했다. "지난 달부터 총 7명이 실종됐고, 어제는 처음으로 시체가 발견됐어."
그는 사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의 모습이었다. 마치 야수에게 물어뜯긴 듯했다.
"크리쳐의 소행입니까?" 지율이 물었다.
협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 쉘터 내부에 크리쳐가 침입했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거야. 이건 마치... 인간이 크리쳐처럼 변한 것 같아."
"인간이 크리쳐로?" 나인이 놀라서 물었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야." 협회장이 말했다. "너희의 첫 임무는 [도시 청소]야. 실종자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해."
지율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가 9년 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크리쳐와 싸울 수 있는 기회.
"한 가지 더." 협회장이 말을 이었다. "이 임무는 신입인 지율에게는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테라 전체 인구 중 이능력자 비율이 적고, 우리가 인력난을 겪고 있어 그의 투입은 불가피해. 윤슬, 지율을 잘 보호해."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의 그림자가 있었다.
브리핑이 끝나고, 지율은 자신의 새 숙소로 향했다. 특수부대원들은 어스 협회 본부 내에 별도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나인이 그를 따라왔다.
"선배님, 저기... 목에 있는 그 문양이 정말 궁금해요.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고요?"
지율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 11살 때 생겼어. 크리쳐 습격으로 부모님을 잃은 날."
나인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때 이능력이 발현된 건가요?"
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해."
나인은 공감의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래요. 가끔 감정이 격해지면 통제가 안 돼요. 한번은 화가 나서 쉘터 전체 전력망을 다운시켰다니까요."
지율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윤슬이 숙소 문 앞에 나타났다. "지율, 훈련장으로 와. 네 이능력을 확인해봐야겠어."
지율은 나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윤슬을 따라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은 넓은 공간으로, 다양한 훈련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네 이능력을 보여줘." 윤슬이 명령했다.
지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뻗었다. 집중하자 그의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바람이었지만, 점점 강해져 훈련장의 장비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제해." 윤슬이 말했다.
지율은 바람을 제어하려 했지만, 갑자기 그의 목 문양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욱 강해져 훈련장 내의 물건들이 날아다녔다.
"멈춰!" 윤슬이 소리쳤다.
하지만 지율은 통제력을 잃었다. 그의 눈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바람은 폭풍으로 변했다. 윤슬은 재빨리 물 방패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지율, 집중해!" 윤슬의 목소리가 폭풍 속에서 들려왔다. "네 감정을 통제해!"
지율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그는 자신의 내면의 분노와 두려움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바람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완전히 멈추었다.
지율은 땀에 젖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호흡은 거칠었고, 목 문양의 빛은 서서히 사라졌다.
윤슬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네 이능력은 감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어.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강한 감정이 통제력을 방해하는 거야."
지율은 고개를 들어 윤슬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제어하는지 알려주세요."
윤슬은 잠시 지율을 관찰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매일 아침 훈련장에서 만나. 네 이능력을 제어하는 법을 가르쳐 줄게."
지율은 감사의 표정을 지었다. 윤슬은 여전히 그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적어도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날 밤, 지율은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다시 11살의 어린 소년이 되어 크리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윤슬과 나인도 크리쳐들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도와줘!" 나인이 소리쳤다.
지율은 바람 이능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무력하게 자신의 동료들이 크리쳐들에게 찢겨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때, 꿈속에 이상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몸은 별빛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 존재는 지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 안에 있는 힘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 존재의 목소리가 지율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파괴가 아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지율이 그 존재에게 손을 뻗으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목 문양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꿈이지...' 지율은 혼란스러웠다. 꿈속의 존재가 너무 생생했고, 그 목소리는 마치 실제로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창문으로 다가가 테라 쉘터의 인공 하늘을 바라보았다. 쉘터의 천장에는 실제 하늘을 모방한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밤하늘이 표시되어 있었고, 인공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이야.' 지율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 이능력을 완전히 제어하고, 크리쳐들을 물리칠 거야. 그리고... 이 문양의 비밀도 밝혀낼 거야.'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꿈속의 존재와 그 말이 계속해서 그의 마음속에 맴돌았다.
'네 안에 있는 힘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파괴가 아닌 보호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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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지율은 일찍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윤슬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물을 이용해 아름다운 형상들을 만들고 있었다. 물방울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지율은 잠시 그 광경에 매료되어 서 있었다. 윤슬의 이능력은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과 하나가 된 듯 부드럽고 우아했다.
윤슬은 지율의 존재를 느끼고 물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다. "왔구나."
"네. 어제 약속대로 왔습니다." 지율이 대답했다.
윤슬은 지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젯밤 악몽을 꿨니?"
지율은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어." 윤슬이 말했다. "게다가 이능력자들, 특히 너처럼 트라우마로 이능력이 발현된 사람들은 종종 악몽에 시달려."
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빛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존재가 꿈에 나타났어요. '네 안에 있는 힘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파괴가 아닌 보호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죠."
윤슬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별빛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네.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몸은 별빛 같았어요."
윤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단순한 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이능력자들의 꿈은 때로 예지나 경고의 의미를 담기도 하니까."
그녀는 화제를 바꾸었다. "오늘부터 네 이능력 제어 훈련을 시작할 거야.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능력은 네 일부라는 거야.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억압하려 하면 오히려 통제력을 잃게 돼."
지율은 주의 깊게 들었다. 윤슬의 말은 꿈속 존재의 메시지와 비슷했다.
"먼저 명상부터 시작하자. 바닥에 앉아." 윤슬이 지시했다.
지율은 지시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윤슬도 그의 앞에 앉았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들이마시고... 내쉬고..."
지율은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마음이 산만했지만, 점차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네 내면의 바람을 느껴봐. 그것이 어떻게 흐르는지, 어떤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 관찰해."
지율은 자신의 내면으로 의식을 돌렸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은 분노, 두려움, 슬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수심과 연결되어 있었다.
"느껴지나요?" 윤슬이 부드럽게 물었다.
"네...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어요. 분노와 복수심이 가득해요."
"그 감정들을 부정하지 마.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하지만 그것들에게 지배당하지는 마."
지율은 자신의 감정들을 마주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 크리쳐들에 대한 분노, 자신의 이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두려움. 그는 그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이제 천천히 바람을 불러봐. 아주 작은 바람부터 시작해."
지율은 손을 뻗어 바람을 불러냈다. 작은 바람이 그의 손바닥 위에 형성되었다.
"좋아, 그 상태를 유지해. 바람을 네 의지대로 움직여봐."
지율은 바람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 다니며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이제 조금씩 강도를 높여봐. 하지만 통제력을 잃지 마."
지율은 바람의 강도를 조금씩 높였다. 바람은 강해졌지만, 여전히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람이 급격히 강해졌다.
"침착해, 지율." 윤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양이 빛날 때 네 이능력이 증폭되는 것 같아. 그것에 집중하지 말고, 호흡에 집중해."
지율은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천천히, 바람은 잦아들었고 문양의 빛도 사라졌다.
"잘했어." 윤슬이 미소지었다. "첫 날치고는 훌륭해."
지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양이 빛날 때마다 이능력이 통제를 벗어나요."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양은 분명 네 이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어.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에 첫 임무가 시작돼. 준비는 됐니?"
지율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됐습니다."
윤슬은 지율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임무 중에는 감정 조절이 중요해. 특히 크리쳐를 마주쳤을 때, 네 분노가 통제력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
지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윤슬의 말이 맞았다. 크리쳐를 보면 그의 분노와 복수심이 치솟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지율은 숙소로 돌아가 임무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특수부대 전투복을 입고, 통신기와 기본 무기를 장착했다. 이능력자들은 주로 자신의 능력에 의존했지만, 비상시를 위한 무기도 항상 휴대했다.
오후가 되자, 지율, 윤슬, 나인은 회의실에 모였다. 협회장은 그들에게 마지막 브리핑을 제공했다.
"첫 번째 실종자는 하층부 32구역의 정비공이었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하층부 경계 근처야. 그곳부터 조사를 시작해."
지율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테라 쉘터는 크게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로 나뉘어 있었다. 상층부는 부유층과 정부 관계자들이 거주하는 구역이었고, 중층부는 일반 시민들의 거주 구역, 하층부는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사는 구역이었다. 하층부 경계는 쉘터의 가장 외곽에 위치해 있어, 크리쳐의 침입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이 임무는 관찰과 정보 수집이 주목적이야." 협회장이 강조했다. "불필요한 위험은 감수하지 마. 특히 지율, 넌 아직 신입이니 윤슬의 지시를 잘 따라."
지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불만이었다. 그는 9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단순히 관찰만 하고 싶지 않았다.
"출발하자." 윤슬이 말했다.
세 사람은 하층부로 향했다. 테라 쉘터의 하층부는 상층부나 중층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좁고 어두운 통로, 녹슨 파이프, 깜빡이는 조명. 사람들의 표정도 더 어둡고 경계심이 많았다.
"여기서 살아보신 적 있어요?" 나인이 지율에게 물었다.
지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스 협회 보육시설에서 자랐어. 중층부였지."
"저는 여기 출신이에요." 나인이 말했다. "전기 이능력이 발현됐을 때 쉘터 일부 구역의 전력망을 다운시켰죠. 그때 어스에서 저를 발견했고요."
윤슬은 앞서 걸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집중해. 우린 소풍 온 게 아니야."
그들은 하층부 32구역에 도착했다. 실종된 정비공의 작업장은 좁고 어두웠다. 먼지가 쌓인 공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흔적을 찾아보자." 윤슬이 말했다.
세 사람은 작업장을 샅샅이 뒤졌다. 지율은 작업대 아래에서 이상한 물질을 발견했다. 그것은 끈적끈적한 검은색 액체였다.
"윤슬, 이거 봐요." 지율이 불렀다.
윤슬은 다가와 그 물질을 살펴보았다. "이건... 크리쳐의 체액 같아."
"크리쳐가 여기까지 침입했다고요?" 나인이 놀라서 물었다.
윤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누군가가 크리쳐를 여기로 데려왔거나."
지율은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작업대 뒤에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했다.
"여기 문이 있어요."
윤슬과 나인이 다가왔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나인, 열 수 있어?" 윤슬이 물었다.
나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의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 그의 손가락에서 작은 전기 스파크가 튀었고, 잠금장치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너머에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는 점점 더 어두워졌고, 습한 냄새가 났다.
"여기가 어디로 연결되는 거죠?" 지율이 물었다.
윤슬은 지도를 확인했다. "이 통로는 공식 지도에 없어. 아마도 쉘터 건설 당시의 유지보수 통로일 거야."
그들은 계속해서 통로를 따라 나아갔다. 갑자기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 같았다.
"조용히." 윤슬이 손짓했다.
세 사람은 조용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통로의 끝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케이지가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저건..." 나인이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케이지 안의 사람들은 반쯤 크리쳐로 변해 있었다. 피부는 회색 비늘로 덮여 있었고, 눈은 붉게 빛났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실종자들이다." 윤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율은 분노로 떨었다. 그의 목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짓을..."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재빨리 숨었다. 한 남자가 공간으로 들어왔다. 그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오늘의 실험체들은 어떤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변환 과정이 예상보다 빠르군."
그는 케이지 중 하나에 다가가 안의 사람—아니, 이제는 거의 크리쳐가 된—에게 주사기를 놓았다. 그 생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인간을 크리쳐로 만들고 있어..." 윤슬이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율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의 목 문양은 이제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주변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지율, 진정해." 윤슬이 그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지금 관찰만 해야 해. 협회에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해야 해."
하지만 지율은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멈춰!" 지율이 소리쳤다.
남자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지율의 목 문양에 고정되었다.
"이런, 이런... 가이아의 씨앗이 여기 있었나." 남자가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지율은 그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가이아의 씨앗? 그게 뭐지?"
남자는 대답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작은 장치를 꺼냈다. 그는 버튼을 누르자, 케이지 안의 생물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케이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게, 가이아의 씨앗."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케이지 문이 하나둘 부서지고, 반쯤 크리쳐가 된 생물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눈은 광기로 가득 찼고,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번뜩였다.
"제길." 윤슬이 욕설을 내뱉었다. "준비해, 싸워야 해!"
그녀는 즉시 물을 소환했다. 물줄기가 공중에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으로 변해 크리쳐들을 향해 날아갔다.
나인은 전기를 모아 크리쳐들을 향해 발사했다. 전기에 맞은 크리쳐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지율은 여전히 분노로 떨고 있었다. 그의 목 문양은 이제 눈부시게 빛났고, 강력한 바람이 그의 주변에서 소용돌이쳤다.
"지율, 제어해!" 윤슬이 소리쳤다.
하지만 지율은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11살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부모님이 크리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인간들이 크리쳐로 변해가는 모습. 그의 분노는 통제를 벗어났다.
바람이 폭풍으로 변했다. 그것은 크리쳐들을 날려버렸지만, 동시에 윤슬과 나인도 위험에 빠뜨렸다.
"지율!" 나인이 소리쳤다. "우리까지 다치게 할 거야!"
그 말이 지율의 의식을 깨웠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의 이능력이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능력은 파괴가 아닌 보호를 위한 것이다.'
꿈속 존재의 말이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지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천천히, 바람은 잦아들었다.
"미안해요." 지율이 말했다.
윤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몇몇 크리쳐들이 여전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 지율은 침착하게 바람을 소환했다. 그것은 더 이상 통제를 벗어난 폭풍이 아니라, 정확하게 겨냥된 바람 칼날이었다. 바람 칼날은 크리쳐들을 정확히 맞추어 쓰러뜨렸다.
"잘했어!" 나인이 환호했다.
모든 크리쳐들이 제압된 후, 윤슬은 통신기를 켰다. "본부, 여기는 윤슬. 하층부 32구역에서 인간을 크리쳐로 변환하는 실험 현장을 발견했다. 실종자들을 찾았으나, 그들은 이미 반쯤 크리쳐로 변해 있음. 지원 요청."
통신기에서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원팀을 즉시 보내겠다. 현장을 확보하고 기다려라."
윤슬은 통신을 끊고 지율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말한 '가이아의 씨앗'이 뭔지 알아?"
지율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요. 하지만 그가 내 목 문양을 보고 그렇게 불렀어요."
윤슬은 생각에 잠겼다. "그 문양은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어. 협회장도 알고 있을 거야."
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쓰러진 크리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때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연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지율이 물었다.
윤슬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여."
지율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런 비극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 남자를 찾아야 해요. 그가 이 모든 것의 배후일 거예요."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지원팀을 기다려야 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
지율은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배후를 찾아내고,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 문양의 비밀도 알아낼 것이다.
'가이아의 씨앗... 그게 뭐지?'
그의 목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마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만, 아직 말해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